막강 보위부 주도 조사위 명단 공개…日당국자 방북 허용도 주목
북한이 일본과의 관계를 풀어가는 데 파격적이라 할 만큼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북한은 일본인 납치 피해 문제 등을 전면 재조사하고 해결할 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4일 명단과 활동방법 등을 언론을 통해 발표했다. 이러한 조치는 매우 이례적이다.
북한이 발표한 특별조사위의 분과 구성과 구성원 면면을 보면 이 사안의 해결에 진정성을 보이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특별조사회는 단순히 몇 명 관련 인사들만 포함된 것이 아니라 4개 분과로 구성된 중앙과 지방까지 망라하는 거대한 조직으로 구성됐다.
위원회에는 주민 감시와 통제를 전담하는 국가안전보위부와 인민보안부(우리의 경찰)의 참사와 국장들이 포함됐고, 최고검찰소와 적십자회 등 주요 관련기관의 핵심 인사들, 심지어 도, 시, 군 지부까지 만들며 만전을 기했다.
과거 김정일 정권과 일본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정권 시절에도 납북자 문제에 관해 일련의 조치가 있었지만, 비밀리에 진행됐다.
무엇보다 이번 특별조사위원장은 최고통치기구인 국방위의 서대하 안전담당 참사 겸 국가안전보위부 부부장이다. 서대하는 실제 납북 일본인의 모든 것을 관장하고 있는 실무기관이자 막강한 파워를 자랑하는 보위부의 차관급이다.
고이즈미 일본 총리 시절에도 일본인 납치 문제를 국방위 타이틀을 단 보위부 부부장이 맡았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일본 측은 그의 직함과 이름도 모를 정도로 베일에 싸여 있어 ‘미스터 엑스’라고 불렸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북한이 종전에는 그토록 외면했던 납치문제 조사과정에서 일본 당국자의 방북을 적시한 점이다.
북한은 이날 조선중앙통신 보도에서 “조사의 객관성과 투명성을 보장하기 위해 필요한 시점에 일본측 관계자들을 우리나라에 받아들인다”고 명시해 사실상 공동조사가 이뤄질 수 있는 환경을 마련했다.
한 일본측 관계자는 “북한이 그동안에는 납치문제를 해결한다고 하면서도 일본 당국자의 방북에 부정적 입장이었다”며 “일본측의 요구를 수용한 것으로 북한이 이 문제에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더욱이 북한이 특별조사위와 관련된 내용을 언론을 통해 공개한 것은 납북자 문제 해결에 대한 의지를 공개적으로 천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북일 정부간 협상의 북한 측 수석대표인 송일호 북일국교정상화교섭 담당대사는 3일 평양공항에서 가진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선총련) 기관지 조선신보와 인터뷰에서 “(명단 공개는) 무조건 합의사항을 이행하겠다는 우리의 입장표시”라며 “조일 쌍방이 합의사항 이행을 위해 서로가 성실히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 아베 총리가 집권기간 납치자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면서 북일관계의 진전에 동력을 보태고 있다.
지난달 19일 일본 최고재판소가 조선총련이 1억엔의 공탁금을 납부하는 조건으로 조선총련 중앙본부 건물을 낙찰받은 일본 부동산 회사의 매각 허가 효력을 이례적으로 정지시킨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일본 내 북한 대사관이나 다름없는 이 건물을 조선총련이 일단 사용할 수 있게 된 셈이다.
북한의 이런 적극적인 움직임은 요동치는 동북아 정세 속에서 외교 다변화를 통해 국제사회의 제재와 고립에서 탈피하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
납북자 문제를 매개로 북일관계를 개선해 식민통치에 대한 경제적 보상을 받고 국교정상화를 골자로 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고이즈미 총리 시절의 ‘평양선언’을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북한을 대변해온 조선총련 기관지 조선신보가 지난 2일자에서 북한이 “동북아 각국의 이해관계를 가늠하면서 외교전을 유리하게 전개하고 있다”고 언급, 한반도와 주변국들의 복잡한 이해관계와 갈등을 파고들면서 국제사회의 제재와 고립에서 벗어나고 정치·경제적 실익을 챙기려는 김정은 정권의 외교정책 기조를 전한데서도 잘 드러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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