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진단] 국민 가슴 후비는 위정자들 막말 왜
김현철 “취업 안 되면 외국 가라”에 분노전문가 “실수 아닌 일그러진 관료 세계관…상대 들으면 어떨지 고려하는 자세 없어”
‘정부 잘하는데 개인 탓’ 靑분위기 지적도
김현철 청와대 경제보좌관이 ‘국내서 취업 안 되면 외국 가라’는 취지의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킨 끝에 29일 사퇴했다. 발언 하루 만에 전격 경질했을 만큼 문재인 대통령이 민심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는 얘기다. 김 보좌관의 발언은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라고 하세요’라는 말로 프랑스 국민의 분노를 부른 것으로 알려진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를 연상시킨다는 지적을 받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렇게 국민의 화를 돋운 건 김 보좌관이 처음은 아니다. 2015년 당시 박근혜 대통령도 ‘국내에서 취업이 어려우면 중동으로 가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가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이렇게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위정자들이 국민 정서와 동떨어진 발언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단순한 말실수가 아닌 대한민국 관료사회와 지도층의 일그러진 세계관이 노출된 것이라고 분석한다.
우선 공감능력 부족이다. 정태연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는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나름대로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려 한 것일 수 있지만 듣는 사람 입장에서 어떨 것이냐, 즉 공감의 준비가 부족했다”며 “자기 입장에서 판단할 것이 아니라 어떤 비유와 어휘를 써야 할지, 상대방이 들으면 실제로 어떨지를 고려하는 치밀함이 없었다”고 했다.
특히 서민들의 삶과 어려움을 체감하지 못하고 머리로만 이해하는 데서 오는 한계라는 지적도 나온다. 정 교수는 “실제 삶 자체가 그런 공감의 자세가 돼야 자연스럽게 국민 입장에서 말을 할 수 있는데 만약 삶의 자세가 그렇지 않다면 쉽지 않은 일”이라고 했다.
공리(功利)주의적 세계관이 머릿속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아세안 시장이 세계 자본시장에서 갖는 의미를 분석한 발언인데 과학적 패러다임만 있고 인간이 빠져 있는 것”이라며 “과학적, 경제학적 분석을 그대로 인간에게 적용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인식론적 괴리로 관료, 사회 상층부, 전문가들 특유의 맹점 중 하나”라고 했다. 이어 “우리가 탁상공론이라 부르는 것들이 대부분 현실의 인간관계나 윤리를 간과한 채 분석을 현실에 그대로 적용하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했다.
이 교수는 “이는 돌출된 발언이 아니라 개발론적 환상을 버리지 못한 대부분의 한국 관료들의 세계관”이라며 “국민을 인구관리적, 인구분배적 관점에서 바라보기 때문에 직장이 많은 곳으로 가라거나 가임지도를 만드는 등 중앙집중식 통제 관점의 문제점이 노출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급속도로 고도화되는 한국사회의 다양성을 과연 한국 관료사회가 흡수할 수 있느냐를 돌아보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바닥 민심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청와대 내부 분위기를 반영한다는 시각도 있다. 김형준 명지대 정치학 교수는 “정부는 잘하고 있는데 개인들의 문제가 있다고 보는 현 정부의 인식론도 투영됐다”며 “지금 청와대는 50·60대, 자영업자, 20대에게 국가의 책임을 전가한다”고 했다.
표현 방식이 세심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의 한 대학 교수는 “기회가 많은 그곳은 어떻겠느냐는 추천의 형식이 됐어야 하는데 당신은 여기에서 기회가 없다고 딱 잘라 말하니 섭섭해하는 사람이 많은 것”이라고 했다.
손지은 기자 sson@seoul.co.kr
2019-01-30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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