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신고’ 문제로 돌아온 북핵 협상…기로에선 北美

결국 ‘신고’ 문제로 돌아온 북핵 협상…기로에선 北美

강경민 기자
입력 2019-03-02 13:22
수정 2019-03-02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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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요구 ‘핵·미사일 프로그램 전면동결’, 신고통한 목록 파악없이 불가北, 신고 미룬채 풍계리→동창리→영변 식 단계적 시설 폐기 주장과거 北美 핵협상 신고 문제 번번이 장애…앞으로도 험로 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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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정상회담 결렬 후 기자회견 나선 트럼프
북미정상회담 결렬 후 기자회견 나선 트럼프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이 28일(현지시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제2차 북미정상회담 합의 결렬 후 숙소인 베트남 하노이의 JW메리어트 호텔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동석한 가운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세기의 핵 담판’으로 기대를 모았던 베트남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되면서 작년부터 시작된 북미 비핵화 프로세스가 중대 고비를 맞이했다.

북미는 대화를 계속한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지만, 이번 정상회담에 참여했던 관계자들의 발언을 종합해보면, 양측은 우선 비핵화 방법론을 놓고 큰 인식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미국은 ‘신고→검증→폐기’로 이어지는 전통적인 비핵화 프로세스를 고수하고 있는 반면, 북한은 풍계리 핵실험장과 동창리 로켓 발사장에 이어 영변 핵시설을 영구 폐기하겠다는 것으로 볼 때 신고를 뒤로 미룬 채 시설 중심으로 단계적 비핵화를 하겠다는 입장으로 추정된다.

이번 협상에서 미측이 영변 핵시설 폐기 ‘플러스 알파’로 모든 핵·미사일 프로그램의 동결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짐에 따라 과거 북미 비핵화 협상에서 장애 요인으로 작용했던 북한의 핵시설 신고 문제가 이번에도 중대 난관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됐다.

미국이 요구하는 핵·미사일 프로그램 전면 동결은 북한이 보유한 핵·미사일 시설 리스트를 빠짐없이 공개하는 전면적인 신고없이는 이룰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번 북미정상회담 진행 상황에 정통한 미 국무부의 고위 당국자는 지난달 28일(현지시간) 회담이 결렬로 끝난 뒤 필리핀 마닐라에서 가진 브리핑에서 북한이 내놓은 영변 핵시설 폐기 카드와 관련해 설명하다 “우리가 직면했던 딜레마는 북한이 현시점에서 그들의 대량살상무기 프로그램에 대한 완전한 동결(complete freeze)을 꺼린다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이 당국자는 “그래서 제재 완화로 (북한에) 수십억 달러를 줌으로써 사실상 현재 진행 중인 북한의 WMD 개발에 보조금을 주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미국으로서는 영변 핵시설 폐기가 핵·미사일 등 WMD 프로그램의 전면 동결과 함께 이뤄지지 않으면 제재 완화로 보상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이번 하노이 정상회담 과정에서 미측이 영변 외 핵시설을 거론한 것도 핵·미사일 프로그램 전면 동결과 관련된 포괄적인 핵프로그램 신고 필요성을 제기하기 위함이라는 관측도 있다.

북측이 제재해제를 요구하자 미측은 미공개 북한 핵시설 자료를 꺼내면서 핵·미사일 프로그램의 전면 신고에 입각한 ‘동결’을 요구했고, 이에 북측이 부담을 느꼈다는 관측이다.

실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28일(현지시간) 하노이를 떠나 필리핀 마닐라로 향하는 전용기에서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북한에 완전한 핵신고 합의를 종용하지 않기로 했다는 미 NBC방송의 전날 보도에 대해 “이번 회담에서도 요구를 했고 앞으로도 할 것”이라고 부인했다.

지난 1월 말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스탠퍼드대 강연에서 비핵화 로드맵과 관련 ‘영변 핵시설 폐기→핵무기 및 영변 외 시설 등에 대한 포괄적 핵신고→완전한 핵폐기’ 수순을 시사하면서 핵신고는 후순위로 밀릴 것으로 관측됐다. 그러나 미국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대북제재 해제를 받으려면 핵무기와 핵물질 신고는 다음으로 미루더라도 핵·미사일 시설(프로그램)에 대한 신고는 곧바로 하라’고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

‘현 단계에서의 포괄적 핵 신고는 타격 좌표를 찍어주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북한의 논리에 미국도 어느 정도 공감하며 ‘포괄적 핵 신고’는 다음단계 과제로 넘기나 싶었지만 미국은 핵·미사일 ‘시설’에 대한 신고도 받지 않고 다음 단계를 진행하는 것은 무리라는 판단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앞으로 북미 비핵화 협상은 북한의 핵시설 몇 개와 대북제재 몇 개를 교환하는 차원을 넘어서 신고·검증을 포함한 비핵화 로드맵을 놓고 벌이는 ‘빅딜’ 담판이 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북미 비핵화 협상 역사로 볼 때 가장 어려운 대목 중 하나는 신고·검증이다.

특히 북한은 과거 협상 때와 달리 핵탄두와 중장거리 탄도미사일을 이미 보유하고 있어 ‘현재와 미래의 핵’(핵시설과 핵물질)뿐 아니라 ‘과거의 핵’(보유 핵무기)도 신고 및 검증 대상에 포함된다.

1994년 제네바 합의나 2005년 9·19 공동성명 때 현재와 미래의 핵을 폐기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는데도 신고 및 검증 과정에서 번번이 진통을 겪으며 고비를 넘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난이도가 몇 배는 높아진 셈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비핵화의 정의에 대해서도 북미 간에 공감대가 충분치 않다는 점이다.

미국은 북한이 보유 중인 핵무기와 물질, 핵무기·탄도미사일 프로그램(관련 시설) 전체에 대한 폐기를 최종단계 비핵화의 목표로 분명히 제시했는데, 북한이 그에 전적으로 동의하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일각에선 양측이 아직 협상의 목표가 ‘비핵화’인지, 핵무기와 그 역량을 줄이는 ‘핵군축’인지에 대해 인식의 일치를 보지 못한 상태여서 비핵화 로드맵 논의가 본격화하면 상당히 진통을 겪게 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됐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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