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전문가 조사 참여 객관성 논란 차단 포석
“천안함 침몰 원인 규명 과정을 우리나라의 국격을 높이는 계기로 삼겠다.”이명박 대통령은 지난주 말 지인들과의 만남에서 이런 각오를 드러낸 것으로 8일 알려졌다. 과학적이고 냉철한 자세로 원인을 밝히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당시 이 대통령을 만났던 한 참석자는 “과거 이런 유의 사건이 발생했을 때 정부가 어느 한쪽으로 원인을 몰았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취지로 들렸다.”면서 “대통령이 상당히 깊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감을 받았다.”고 전했다.
참석자들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을 언급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타임지 기자가 천안함 침몰에 관한 우리 정부의 대응이 과거의 행태와 사뭇 달라서 어떻게 된 건지 그 배경을 취재하러 입국해 지금 정부 당국자들을 만나고 다닌다고 한다.”고 소개한 뒤 “그만큼 우리가 달라졌다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대통령의 이날 발언들은 이번 주 들어 잇따라 실체화되고 있다.
이 대통령은 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민간과 군의 최고 전문가를 보내 달라고 했다.”는 비화를 7일 공개했다. 월터 샤프 한미연합사령관이 5일 “미국 정부는 최고 수준에서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배경에 이 대통령의 요청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미국뿐 아니라 영국과 호주, 스웨덴이 7일 조사 전문가들을 참여시키겠다고 밝힌 배경에도 이 대통령의 지시가 작용했음이 뒤늦게 밝혀졌다.
유엔에 공동조사 지원을 요청하라는 이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국방부가 유엔 회원국들을 상대로 접촉에 나섰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이 대통령의 구상대로 국제적인 공동조사를 통해 ‘객관성 있는’ 결론이 도출된다면 그것은 의미심장한 위력을 가질 수도 있다. 침몰사고의 책임자가 편파판정이나 음모론을 들먹이며 방어막을 치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나아가 국내 여론과 정치권도 이념이나 정파에 따라 반으로 갈려 청와대를 편파적이라고 몰아세우기 힘들지 모른다. 절묘한 구상인 셈이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2010-04-09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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