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상징으로 급부상한 판문점

평화의 상징으로 급부상한 판문점

이주원 기자
입력 2019-06-30 23:28
수정 2019-07-01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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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끼 만행사건’ 등 무력충돌 빈번했지만 3국 정상 만남으로 분단의 상징서 탈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만남을 가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은 과거 북미 간 무력충돌도 발생했던 곳인 만큼 이번 두 정상의 만남으로 JSA가 분단의 상징에서 평화의 상징으로 탈바꿈한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JSA는 6·25전쟁 당시 1953년 정전협상을 하면서 유엔군과 중공군, 북한군이 원만한 회의를 하기 위해 합의해 군사분계선(MDL)상에 설정된 곳이다. 그동안 군사적 긴장감이 고조됐던 것과 동시에 남북 간 회담과 접촉을 위한 교류 장소로 활용됐다.

1976년 8월 북한군이 미군을 도끼로 사망케 하는 ‘도끼 만행 사건’이 발생하면서 언제든 군사적 충돌이 일어날 수 있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당시 미군 병사가 JSA 서쪽에 위치한 ‘돌아오지 않는 다리’ 부근에 있던 미루나무 가지치기 작업을 하던 중 북한군이 도끼로 미군을 살해해 일촉즉발의 군사적 대치가 벌어졌다.

원래는 JSA는 ‘공동경비구역’이란 명칭 그대로 북한군 초소가 남측 경비구역에 설치가 돼 있었으나 도끼 만행 사건으로 인해 북측은 북한군이, 남측은 유엔군이 분할해 경비하는 지역으로 제한됐다.

하지만 지난해 남북 대화 분위기가 무르익으면서 JSA의 분위기도 과거와는 달리 평화의 상징으로 바뀌었다.

지난해 4월 남북 정상회담이 최초로 판문점 남쪽 평화의집에서 만났다. 당시 문 대통령은 MDL을 넘어 북쪽 지역으로 발걸음을 내딛는 모습도 보여 줬다. 이어 5월에 깜짝 개최된 남북 정상회담도 북측 지역인 통일각에서 개최됐다. 특히 지난해 9월 남북 정상회담 당시 남북이 군사합의에 합의하면서 군사적 긴장감은 대폭 줄어들었다. 권총을 차고 경비를 서던 경비 인원들의 모습은 이제 볼 수 없게 됐고 JSA 내에서 모든 화기들은 합의에 따라 철수했다. 남북은 민간인들의 JSA 자유 왕래도 합의하며 현재 남북 및 유엔군사령부가 공동근무수칙 등 관련 협의를 이어 가고 있는 상황이다.

이날 두 정상의 회담이 개최된 자유의집은 판문점의 남측 지역에 위치한 4층 건물로 북측 판문각과 마주 보고 있다. 1971년 ‘제1차 남북적십자예비회담’ 합의에 따라 자유의집과 판문각에 직통전화와 연락관이 배치돼 연락 채널의 역할을 담당했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2019-07-01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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