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진군 출신 처음… 대청도 ‘섬소년’ 진성이 서울대 가다

옹진군 출신 처음… 대청도 ‘섬소년’ 진성이 서울대 가다

입력 2010-12-11 00:00
수정 2010-12-11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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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화속에서 건진 서해5도 ‘희망’

느닷없이 연평도 포격 소식이 들려왔다. 텔레비전은 종일 포격 소식을 전했고, 마을은 온통 흉흉한 바람에 들썩거렸다. 그날도 진성이는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한눈 팔 겨를이 없는 그도 포격 소식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러다 뭐가 잘못되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학교도 일주일간이나 휴교했다. 마음을 다잡으려 해도 도무지 집중이 되지 않았다. “그동안 준비했던 대학시험이 물거품이 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에 다리가 풀릴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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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 5도에서 처음으로 서울대에 합격한 백진성(가운데)군이 12일 인천 옹진군 대청도 대청고교에서 김영곤(왼쪽) 교장 등으로부터 축하 인사를 받고 있다.  대청고 제공
서해 5도에서 처음으로 서울대에 합격한 백진성(가운데)군이 12일 인천 옹진군 대청도 대청고교에서 김영곤(왼쪽) 교장 등으로부터 축하 인사를 받고 있다.
대청고 제공
명강사들이 즐비한 유명한 학원에서 밤잠을 설치며 공부한다는 도시 애들이 떠올랐다. 그런데도 정작 자신은 대입 면접시험을 보러 뭍으로 나갈 수나 있을지를 걱정해야 했다. 한사코 요동치는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일부러 책에 얼굴을 파묻었다. 뭔가에 미친 듯 몰두해야 했다. 그렇게 치른 올해 서울대 수시모집 기회균형전형에서 그는 당당히 교육학과에 합격했다. 옹진군 전체에서 나온 첫 서울대 합격자라는 사실을 안 건 나중이었다.

섬아이 백진성(17)군의 서울대 합격 소식은 훈훈한 충격이었다. 합격 소식에 들뜰 법도 하건만 그는 침착하고 의젓했다. “저처럼 즐기면서 공부할 수 있는 교육정책을 만드는 게 꿈이에요.” 즐겁게 공부하는 환경을 만들고 싶어 교육학자가 되겠다는 그는 “비로소 꿈에 한 걸음 다가설 수 있게 됐다.”며 환하게 웃었다.

진성이는 인천에서 태어났지만, 2살 때 부모가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육지생활을 접고 할아버지 때부터 살던 고향 대청도로 왔다. 사시사철 거센 바람을 맞으며 자란 탓일까. 진성이는 보통의 섬사람들처럼 조용하고 우직했다. 옹진군 전체에서 서울대에 합격한 최초의 학생이라는 말에도 “그게 뭐 중요한가요.”라면서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도시 아이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공부해 온 진성이의 성품이 엿보였다. 대청도에 사는 학생들은 대부분 중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더 좋은 교육환경을 위해 도시로 나가지만 진성이는 뒷바라지를 할 수 없는 가정형편 때문에 섬에 남을 수밖에 없었다. 그가 경험한 유일한 과외는 ‘해병대 형님’들이 꾸리는 주말학교 공부였다.

어머니 류석자(44)씨는 “2학년 때부터 인천으로 나가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엄마 아빠가 돈 없는 줄 알고 ‘열심히 하면 되잖아요’라며 새벽 1~2시까지 공부한 아들이었다.”면서 “가고 싶은 대학, 학과에 합격했으니까 어려운 사람한테 베풀 줄 아는 훌륭한 학자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진성이는 이번 수능에서 언어·외국어는 상위 1%, 수리는 5% 안에 드는 뛰어난 성적을 냈다.

진성이의 합격 소식은 가족만의 기쁨이 아니었다. 옹진군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공부해 처음으로 서울대에 합격한 진성이 소식에 많은 사람들이 손뼉을 치며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1300명이 모여 사는 대청도의 한집 건너 다 아는 이웃들과 학교 선생님들이 모두 몰려와 합격을 축하했다. 대청초·중·고를 함께 다니며 12년 동안 같은 교실에서 공부했던 급우 8명도 그의 합격 소식에 다같이 환호성을 질렀다. 진성이를 중학교 때부터 가르친 유병석 부담임교사는 “진성이는 서해 5도 포화 속에서 건진 희망”이라며 “선생님들도 최선을 다했다.”며 감격했다.

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2010-12-11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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