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힘겨운 시간이었습니다.앞으로 두번 다시 이런 일을 겪고 싶지 않습니다.”
지난달 23일 벌어진 북한의 연평도 기습 포격은 평화롭던 연평도 주민들의 삶에 엄청난 혼란과 고통을 가져왔다.
혼란의 근본적인 원인은 피란민 지원을 위한 매뉴얼이나 기반시설이 전무하다는 점이었다.
연평도 주민들은 쑥대밭이 된 마을을 뒤로 하고 쫓기듯 인천으로 대피했지만,이들이 갈 곳이라고는 중구의 찜질방 ‘인스파월드’ 뿐이었다.
포격 자체도 사상초유의 사태였지만,1천명이 넘는 대규모 인원이 섬을 떠나 뭍으로 ‘피란’을 할 것이라고는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뒤늦게 인천시가 피란민 이주대책 마련에 착수했지만,주민들의 의견 수렴과 이주지 물색,재원 확보 등에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결국 연평도 주민들은 19일 경기도 김포시 양곡지구에 마련된 임시거처로 이주할 때까지 27일간이나 찜질방 생활을 이어가야 했다.이는 1950년 한국전쟁 이후 최장 기간,최대 규모의 피란 사태였다.
포격 당시의 충격과 공포에서 벗어나 안정을 취해야 할 어린 학생들이 이 학교 저 학교를 전전하는 것도 문제였다.전문가들은 이들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겪게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했다.
피해 주민들을 위한 보상도 전례나 기준이 없다 보니 우왕좌왕하는 양상이었다.연평도 주민들의 임시거처 이주가 늦어진 것도 지원금 액수 등을 둘러싼 인천시와의 의견 차이가 큰 원인이었다.인천시가 예비비 5억원을 긴급 투입해 추진한 특별취로사업도 주민들 간의 의견 불일치로 시작부터 난항을 겪었다.
민간인 희생자 고(故) 김치백(61),배복철(60)씨의 경우에도 보상과 의사자 인정 문제 등을 놓고 정부와 유족 간의 입장 차이가 좁혀지지 않아 장례 일정조차 잡지 못하는 모습이 연출됐다.결국 고인들의 장례는 시신 발견 12일만에야 치러졌다.
대피소 현황도 열악하기 이를 데 없었다.
연평도와 백령도 등 서해 5도의 주민 대피시설 57%가 노후돼 대피소의 기능을 수행하는데 문제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이들 대피소는 대부분 건립된 지 35년이 지났고 환기.급수 시설 등을 고려할 때 유사시 대피소로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시간은 40분에 불과했다.
인천 시내 역시 문제가 심각하기는 마찬가지였다.현재 인천 시내에는 모두 1천160개의 대피소가 있지만,시민 대다수는 대피소의 존재에 대해 ‘금시초문’이라는 반응을 보였다.시민들은 “연평도 사건을 보고 나니 유사시에 어디론가 피신은 해야 할텐데,이에 대한 안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문제는 ‘제2의 연평도 사태’ 발발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실제로 지난 16일 국방부가 연평도 사격훈련 재개 방침을 밝히자 북한이 추가 타격 위협을 내놓는 등 서해5도를 둘러싼 긴장감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상태다.
이에 대해 인천시 관계자는 “100억원을 투입해 연안부두나 송도 일대에 100실 규모의 대피용 콘도 및 주거시설 형태의 ‘서해 마을’을 조성하기로 했으며,대규모 지하시설 1곳(660㎡)과 중소규모 지상시설 6곳(330㎡) 등 주민 대피시설도 새로 지을 것”이라고 말했다.또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서는 절대 안 되겠지만,유사시에는 이번 경험을 준용해 주민의 안정을 최대한 보장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연합뉴스
지난달 23일 벌어진 북한의 연평도 기습 포격은 평화롭던 연평도 주민들의 삶에 엄청난 혼란과 고통을 가져왔다.
혼란의 근본적인 원인은 피란민 지원을 위한 매뉴얼이나 기반시설이 전무하다는 점이었다.
연평도 주민들은 쑥대밭이 된 마을을 뒤로 하고 쫓기듯 인천으로 대피했지만,이들이 갈 곳이라고는 중구의 찜질방 ‘인스파월드’ 뿐이었다.
새 거처에 도착했지만
북한의 연평도 포격으로 지난달 23일 이후 인천시 중구 한 찜질방에서 임시숙소생활을 해온 연평도 주민들이 19일 오후 임시거처로 마련된 경기도 김포시 LH아파트로 이사했다. 주민들이 미처 가재도구가 준비되지 않은 방에 모여 앉아 제2의 피난생활에 대한 불안감을 말하고 있다.
인천=연합뉴스
북한의 연평도 포격으로 지난달 23일 이후 인천시 중구 한 찜질방에서 임시숙소생활을 해온 연평도 주민들이 19일 오후 임시거처로 마련된 경기도 김포시 LH아파트로 이사했다. 주민들이 미처 가재도구가 준비되지 않은 방에 모여 앉아 제2의 피난생활에 대한 불안감을 말하고 있다.
인천=연합뉴스
포격 자체도 사상초유의 사태였지만,1천명이 넘는 대규모 인원이 섬을 떠나 뭍으로 ‘피란’을 할 것이라고는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뒤늦게 인천시가 피란민 이주대책 마련에 착수했지만,주민들의 의견 수렴과 이주지 물색,재원 확보 등에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결국 연평도 주민들은 19일 경기도 김포시 양곡지구에 마련된 임시거처로 이주할 때까지 27일간이나 찜질방 생활을 이어가야 했다.이는 1950년 한국전쟁 이후 최장 기간,최대 규모의 피란 사태였다.
포격 당시의 충격과 공포에서 벗어나 안정을 취해야 할 어린 학생들이 이 학교 저 학교를 전전하는 것도 문제였다.전문가들은 이들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겪게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했다.
피해 주민들을 위한 보상도 전례나 기준이 없다 보니 우왕좌왕하는 양상이었다.연평도 주민들의 임시거처 이주가 늦어진 것도 지원금 액수 등을 둘러싼 인천시와의 의견 차이가 큰 원인이었다.인천시가 예비비 5억원을 긴급 투입해 추진한 특별취로사업도 주민들 간의 의견 불일치로 시작부터 난항을 겪었다.
민간인 희생자 고(故) 김치백(61),배복철(60)씨의 경우에도 보상과 의사자 인정 문제 등을 놓고 정부와 유족 간의 입장 차이가 좁혀지지 않아 장례 일정조차 잡지 못하는 모습이 연출됐다.결국 고인들의 장례는 시신 발견 12일만에야 치러졌다.
대피소 현황도 열악하기 이를 데 없었다.
연평도와 백령도 등 서해 5도의 주민 대피시설 57%가 노후돼 대피소의 기능을 수행하는데 문제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이들 대피소는 대부분 건립된 지 35년이 지났고 환기.급수 시설 등을 고려할 때 유사시 대피소로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시간은 40분에 불과했다.
인천 시내 역시 문제가 심각하기는 마찬가지였다.현재 인천 시내에는 모두 1천160개의 대피소가 있지만,시민 대다수는 대피소의 존재에 대해 ‘금시초문’이라는 반응을 보였다.시민들은 “연평도 사건을 보고 나니 유사시에 어디론가 피신은 해야 할텐데,이에 대한 안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문제는 ‘제2의 연평도 사태’ 발발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실제로 지난 16일 국방부가 연평도 사격훈련 재개 방침을 밝히자 북한이 추가 타격 위협을 내놓는 등 서해5도를 둘러싼 긴장감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상태다.
이에 대해 인천시 관계자는 “100억원을 투입해 연안부두나 송도 일대에 100실 규모의 대피용 콘도 및 주거시설 형태의 ‘서해 마을’을 조성하기로 했으며,대규모 지하시설 1곳(660㎡)과 중소규모 지상시설 6곳(330㎡) 등 주민 대피시설도 새로 지을 것”이라고 말했다.또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서는 절대 안 되겠지만,유사시에는 이번 경험을 준용해 주민의 안정을 최대한 보장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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