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 김치녀 “연애하면 섹스해야 하지만…”

고려대 김치녀 “연애하면 섹스해야 하지만…”

입력 2014-01-16 00:00
수정 2014-01-16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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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가 처음 붙은 고려대 정경대 후문에 ‘김치녀, 안녕들하십니까’라는 제목의 벽보가 이어지고 있다. ‘김치녀’는 일부 네티즌들이 여성을 비난할 때 쓰이는 말이다. 이 벽보들은 아이러니하게 스스로를 ‘김치녀’로 칭하면서 한국 사회의 여성 혐오를 비판하고 있다.

지난 15일 고려대에 붙은 ‘김치녀로 호명되는 당신, 정말로 안녕들하십니까’라는 제목의 벽보는 카카오톡 메신저 그룹 채팅창을 묘사한 게시물과 함께 붙었다. 이 대자보 명의로 ‘댁의 김치는 안녕들하십니까?’라는 페이스북 동명 페이지(facebook.com/kimchicantbeok)가 개설돼 있기도 하다.

대자보에서 ‘배추김치’라는 화자는 “당신은 학벌과 임금이 남성보다 낮거나 혹은 높거나, 연애상대로써 외국인을 선호하거나, 섹스 경험이 많거나, 연애하면서 섹스를 해주지 않았거나, 이상형이 키 큰 남자이거나, 여러 남자와 친하거나, 여대에 다니거나, 내숭을 떨었거나 떨지 않았거나, 성형을 하고 예쁘거나, 성형을 안하고 못생겼거나 등등의 이유로 인해 김장당한 김치”라고 말한다.

이어서 옆 대자보에는 “이같은 김치녀의 기준은 실제 온라인 다양한 사이트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적은 것을 모아놓은 것으로 한국 여성 누구도 김치녀로 벗어나지 못한다”면서 “행여 김치녀라는 이름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기 검열하는 건 아닌지, 여성혐오가 보편적인 사회에서 정말로 안녕하신지 모든 한국 여성들에게 묻고 싶다”라고 썼다.

또 “여성혐오는 ‘김치녀’·‘된장녀’라는 노골적이고 일상적 형태로 자리잡았다. 이 시대 살아가는 여성들은 자신이 김치녀나 된장녀가 아님을 계속 증명해야만 한다”면서 “(여성의) 개념없음의 잣대는 남성에게 적용되는 것과는 다르고 자의적, 폭력적이다. 공중파 TV에서 못생기고 뚱뚱한 여성을 웃음거리로 삼고 비하하지만 키 180이하 남자가 루저라고 말한 여성은 일자리에서 쫓겨난 채 사회에서 매장당했다”고 밝혔다.

이후 이 대자보에 화답하는 벽보가 2건 더 붙었다. ‘민경’이라고 밝힌 고려대 학우는 ‘개념녀가 되기 위해 너무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만 해서 안녕하지 못합니다’라는 제목의 벽보를 붙였다.

그는 “명품 가방 안 좋아하고 스타벅스 커피 안 마시고 남자들과 함께 된장녀를 욕하면 저는 개념녀가 될 수 있을 줄 알았다”며 “그러나 성격도 좋아야 하지만 여자들과 너무 친해서도, 너무 친하지 않아서도 안 되고, 너무 많은 남자들과 친해서도 안 되고, 하지만 남자들과 친하지 않고 너무 도도해서도 안 되고, 내숭을 부려서도 안 되고, 과하게 털털하고 내숭이 없어서도 안 되고, 연애를 하면 상대와 섹스를 해야 하지만 또 한 편으로는 처녀여야만 하고... 이제 저는 어떻게 해야 개념녀가 될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썼다.

이어 “좁디 좁은 ‘개념녀’의 자리에 저를 놓는 불가능한 일을 그만두고 제가 살고 싶은 대로, 느끼는 대로, 원하는 대로 사는 데에 붙여지는 이름이 ‘김치녀’라면 그 이름을 기쁘게 받아들이겠다”고 밝혔다.

‘고민많은 10학번 여학생 c양’은 ‘김치녀가 될 수밖에 없어서 안녕하지 못합니다’라는 글에서 “취업시장, 최고의 스펙은 ‘남성’이다. 여성이 직장에서 살아남으려면 남성보다 더 남성다워야 한다. 성공한 여성들? 여성이 대통령이 되려면 대통령 아버지 딸이어야 하고, 성공한 여성 기업인은 기업 총수 딸이거나 부인”이라고 썼다.

그는 “평범한 여성이 이 사회에서 안녕하려면 안정적인 직장을 가진 남성을 만나기 위해 젊음과 아름다움을 유지하려 성형, 화장을 한다. 그렇게 우리는 하나둘씩 김치녀가 된다”며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왜곡없이 지키는 것이 너무나 힘들다. 대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욕먹지 않을까요?”라고 덧붙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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