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증거조작’ 처벌 결국 국보법 대신 형법 택했다

檢, ‘증거조작’ 처벌 결국 국보법 대신 형법 택했다

입력 2014-04-01 00:00
수정 2014-04-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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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요원·협조자에 모해증거위조 등 혐의 적용

검찰이 31일 간첩사건 증거조작에 관여한 국가정보원 협조자 김모(61ㆍ구속)씨를 재판에 넘기면서 적용한 혐의는 형법상 사문서위조와 행사, 모해증거위조 및 사용 등 크게 4가지다.

김씨에게 문서 위조를 요구하고 위조된 문서를 건네받은 국정원 대공수사팀 김모 기획담당 과장(일명 김 사장·57·구속)에게는 허위공문서작성 및 행사 혐의가 추가됐다.

논란이 된 국가보안법상 무고·날조 혐의는 배제됐다.

대공수사를 전담해 온 국정원 직원을 국보법 위반으로 처벌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피하기 위한 검찰의 ‘고육지책’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협조자ㆍ국정원 요원 공모 확인…사문서위조 혐의 적용

김 과장과 김씨에게 적용된 혐의의 기본 토대는 사문서위조 및 행사로부터 출발한다.

형법상 사문서위조죄는 권리·의무 또는 사실증명에 관한 타인의 문서 등을 위조·변조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위조사문서를 행사한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중국의 공문서는 우리나라에서는 사문서에 해당한다.

당초 법조계에서는 김씨가 중국 국적자인데다 중국 현지에서 문서를 꾸민 것으로 알려진 만큼 단독 범행이라면 위조사문서 행사죄는 물을 수 있지만 사문서위조죄를 적용하기 어려울 것으로 관측했다. 외국인이 외국에서 벌인 범죄는 원칙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처벌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검찰은 그러나 김씨가 내국인, 즉 국정원 직원의 요청을 받고 공모해 범행에 가담했다는 점에서 사문서위조죄의 공범으로 함께 처벌이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김 과장은 지난해 12월 경기도 분당 등지에서 김씨를 만나 변호인 측이 제출한 싼허(三合)변방검사참 명의 정황설명서에 대해 반박 내용을 담은 답변서 입수를 요청했다.

김씨가 “군부인 싼허변방검사참으로부터 그러한 확인서를 받을 수 없으므로 가짜로 만들어 오는 방법 밖에는 없다”고 하자 김 과장은 “중국에서 문제될 리가 없으니 걱정말라”며 위조를 명확히 지시했다.

즉 김 과장이 국내에서 김씨에게 사문서위조를 지시했고 이후 위조된 사문서를 행사한 만큼 공범 관계에 있다고 본 것이다.

◇국보법 대신 형법상 모해증거위조 적용

검찰은 김 과장과 김씨에게 사문서위조 및 행사와 별도로 모해증거위조 및 사용 혐의도 적용했다.

모해증거위조 및 사용죄는 수사·재판을 받는 사람 또는 징계 혐의자를 모해(謨害)할 목적으로 증거를 위조하거나 위조된 증거를 사용한 경우 적용된다.

타인을 형사처벌받게 하려는 의도가 있는데다 사법체계에 혼란을 일으킨다는 점에서 통상적인 증거위조죄보다 죄질이 더 나쁘다. 형량은 증거위조죄의 갑절인 징역 10년 이하다.

문제는 이 조항이 국가보안법상 무고·날조죄와 사실상 같다는 점이다. 국가보안법 12조는 ‘남을 형사처분 받게 할 목적으로 국보법 위반죄에 대해 증거를 날조한 자는 각조에 정한 형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같은 범죄행위라면 두 조항을 함께 적용할 수 없고 특별법인 국가보안법이 형법에 우선한다는 것이 법조계의 중론이다.

앞서 천주교인권위원회와 유씨 변호인을 맡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사건의 본질은 증거조작을 통한 간첩조작”이라며 “위조와 관련된 사람들을 모두 국가보안법상 무고·날조죄를 적용해 처벌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검찰은 그러나 이미 수사 과정에서 국보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기 어렵다는 뜻을 명확히 했다. 실제 이날 법원에 제출한 공소장에서도 관련 법규 적용이 배제됐다.

유씨의 간첩 혐의를 만들어내기 위해 증거를 날조했다면 국보법상 날조죄로 처벌이 가능하지만 이미 간첩 혐의를 받고 있는 유씨 관련 증거를 조작했다면 모해증거위조 혐의를 적용하는 것이 법리적으로 타당하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그러나 검찰이 국가 최고 정보기관이자 대공수사 파트너인 국정원에 국가보안법을 들이댄다는 부담 때문에 형법을 대신 택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날조의 범위를 ‘위조 증거의 사용’까지 넓게 보고 해석할 경우 위조 문서를 법정에 제출한 공판검사 2명까지 국가보안법의 사정권에 들어간다는 점도 고려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영사 지위 이용 허위 확인서 작성도 처벌

검찰은 김씨와 달리 김 과장에게는 허위공문서 작성 및 행사 혐의도 추가했다.

우리 형법에서는 공무원이 직무에 관해 문서 등을 허위로 작성하거나 이를 행사할 경우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김 과장과 유씨 수사팀에서 활동하다 중국 선양(瀋陽) 총영사관 부총영사로 파견 간 권모 과장(51)은 지난해 12월 위조된 싼허변방검사참의 정황설명 답변서를 입수, 이인철 선양영사관 교민담당 영사에게 전달했다.

국정원 직원인 이 영사는 답변서가 위조된 것을 알고도 ‘사실과 틀림이 없음을 확인함’이라는 내용의 허위 확인서에 서명했다. 이 영사는 이어 영사관 공증담당 영사로부터 공증을 받은 뒤 이 문서를 국정원 수사팀에 전달했다.

검찰은 김 과장 등의 요청을 받고 이 영사가 허위 확인서를 작성한 뒤 공증을 받은 행위가 ‘공무원이 직무에 관해 문서 등을 허위로 작성’한 행위로 판단했다.

즉 김 과장과 권 과장, 이 영사가 허위공문서작성 및 행사죄의 공범 관계에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에 따라 이날 기소된 김 과장 외에 권 과장과 이 영사 등 관련된 국정원 직원에 대한 추가 사법처리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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