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여 가구 경제사정으로 이주 못해…주민끼리 갈등도
“이주대책을 마련하고서 대피명령을 내려야지 이런 주먹구구식 행정이 어디 있나요?”전북 익산시가 붕괴 위험이 있다며 모현우남아파트 주민들에게 긴급 대피명령을 내린 지 오는 11일로 한 달째를 맞지만, 주민들은 경제사정을 이유로 차일피일 이사를 미루고 있다.
9일 익산시와 주민들에 따르면 시는 지난달 11일 모현우남아파트 입주민들에 대해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제40조’를 근거로 긴급 대피명령을 내렸다.
박경철 익산시장은 발표문을 통해 “특별조사단의 안전점검 결과 심각한 재난안전위험이 있어 입주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대형 인재를 예방하고자 긴급 대피명령을 발동한다”고 밝혔다.
대피명령이 내려진 지 한 달이 됐지만 이사한 가구는 88가구 중 10여 가구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 아파트에는 350여명이 살고 있으며 전체 103가구 중 15가구는 명령 발동 전에 거주지를 옮겼다.
익산시가 대피명령을 내렸으나 이주를 강제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대피하지 않으면 경찰을 통해 강제대피를 하거나 2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되지만, 아파트가 사유재산인데다 이사할 곳이 없는 주민들을 강제로 이주시키기도 어렵다.
시는 가구당 120만원 한도에서 이주비를 지원하고 3천만원 이하 저리 융자를 알선하고 있다.
이 아파트의 시세가 5천만원에 불과한데다 익산시가 이주를 알선한 아파트는 전세가만 1억7천만원선이다.
사정이 이렇자 주민들은 익산시가 너무 서둘러 대피 명령을 발표하는 바람에 ‘붕괴 직전 아파트에 사는 주민’이란 낙인과 함께 급히 다른 거처를 마련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주민 김모(68)씨는 “갑자기 대피명령이 내려져 불안을 호소하는 주민이 부쩍 늘었다”며 “5천만원 안팎의 돈으로 익산 어디에서 아파트를 구하겠느냐”고 하소연했다.
김갑섭 모현우남아파트 재건축추진위원장도 “막상 대피명령이 발동됐어도 주민 대부분이 경제적인 형편 때문에 이사할 처지가 못된다”며 “주민들이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져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불안감이 커지면서 20여 가구가 추가로 이사를 고려하는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주민들끼리도 내분을 겪고 있다.
일부 주민은 재건축을 주장하는 반면 다른 주민들은 보수·보강을 거쳐 재입주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1992년 11월 준공된 모현우남아파트는 2002년 구조안전진단 결과 철거대상인 D, E급 판정을 받고 익산시로부터 재난위험시설로 지정됐다.
이후 한차례도 보수·보강 공사를 하지 않아 붕괴 위험 상황에 직면했다.
이에 대해 익산시 관계자는 “주민들이 이사할 여력이 없고 대피 명령에 대해 호불호가 갈리는 건 사실”이라며 “대출 문의가 계속되고 있는 만큼 최대한 행정력을 동원해 이주 절차를 마무리하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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