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도에 살아 있을까’ 가족들끼리 위로하고 다독이고”가족의 시각으로 풀어야할 문제”…무책임한 정부 성토
“제 얼굴 그려진 그림을 바다에 띄우면 이거 보고 남편이 찾아올까 봐…. 찾아서 좋은 곳에서 편하게 지내라고 장례 치르는 거, 그거라도 해주고 싶어요.”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꼭 반년이 지났다.
그러나 지난 13일 오후 취재진이 찾은 팽목항과 진도 실내체육관은 여전히 4월 16일에 멈춰 있었다.
”아직도 너무 생생한데”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지 반 년이 다되가지만 아직 남은 실종자 10명은 바닷 속에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지난 13일 오후 텅 빈 전남 진도실내체육관을 지키고 있던 한 실종자 가족이 딸의 초상화를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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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째 홀로 남편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는 단원고 양승진 교사의 아내 유백형(53)씨는 주사때문에 퉁퉁 부어오른 손으로 자원 봉사를 하는 화가들이 남편과 자신을 그려준 초상화를 가리키며 “얼마 전부터 초상화를 보고 ‘여보 나 잘게’ 인사를 하고 잠자리에 든다”고 말했다.
유씨는 지금은 휑하니 빈 체육관 한가운데에 반년째 담요를 펴놓고 잠을 청한다.
지난 7월 남편인 듯했다가 이내 다른 배에서 실종된 중국인 선원으로 확인됐을 때에도 “어떡하긴. 안타깝지만 기다려봐야지”라며 의연한 모습을 보였지만 혼자서 속울음을 삼킨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유씨는 “남편을 너무 젊게 그려줘서 하늘나라에 가서 회춘했다고 실없는 소리를 해보지만 사실 지금도 안 믿어진다. 남은 학생들하고 어디 무인도에서라도 살아 있었으면 하는 상상도 한다”며 “4월 16일 그날의 기억이 늘 생각난다. 가끔 TV에 세월호가 기운 모습을 보면 가슴이 벌렁거리고 정부가 미워진다”고 말했다.
몸이 쇠약해져 주사를 맞으며 버티고 있는 유씨는 기력이 허락할 때면 수색 작업을 하는 바지에 직접 찾아가 고생하는 잠수사들의 손을 잡아주거나 행여 남편이 자신의 목소리, 체취를 알아채고 찾아와 주지 않을까 기다리다 돌아오기를 반복하느라 얼굴이 많이 그을렸다.
유씨는 조만간 자신의 초상화를 들고 가 사고 해역에 띄울 예정이다.
유씨 등 실종자 가족들은 “최근 잠수사로부터 배 안에 펄이 많이 쌓여 수색을 못하는 구역이 많다는 말을 들었다”며 “정부는 6개월이 지난 지금도 자세히 설명도 해주지 않고 동절기 수색 계획조차 제대로 수립하지 않고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가족들이 여기저기서 정보를 찾아 건의하면 그제야 알아보겠다는 예전 방식을 여전히 반복하고 있다”고 원망했다.
실제 범정부사고대책본부는 현재까지 동절기 수색방침은 물론, 장기적인 관점에서 언제까지 현재와 같은 수중 수색을 진행하고 선체 인양은 어느 시점에서 하는 것이 효율적인지 밝힌 적이 없다.
전문 지식이 필수적인 수색 계획도, 실종자 가족들의 임시 거처 문제도 모두 가족들이 먼저 의견을 제시할 것을 요구해왔다.
이날 팽목항을 찾은 방문객들더 답답한 심정을 드러냈다.
희생된 학생들과 또래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광주 성덕고등학교 김성중 교사는 “사고가 난 지 반 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실종자 10명을 찾지 못한 것이 답답해서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 것인지 알고 싶어 팽목항에 왔다”고 말했다.
김 교사는 “5월 5일 어린이날에도 왔는데 그 뒤 어느 순간부터는 진척이 되지 않아 너무 답답했다”며 “사람들이 지쳐가고 이제 그만 정리하자는 말도 나오는데 아직도 10명이나 돌아오지 않고 있는데 그냥 둘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등대로 향하는 길 난간에 묶인 노란 리본과 풍경 사이로 바람에 날리는 실종자들의 초상화를 바라보는 방문객들의 눈빛에는 안타까움과 미안함이 묻어났다.
어머니와 함께 전주에서 팽목항을 찾은 김유녀(46·여)씨는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바람에 엉킨 노란 리본이라도 풀어주고 있다”며 “혹여 풍경소리가 바닷속 희생자들에게 가족에게로 오는 길을 알려주지 않을까…. 도움을 줄 수 없어 미안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수색 장기화, 경기 침체 등을 이유로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이 이제는 수색 중단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일부 의견에 대해 “나라도 차가운 바닷속에 있을 아이들을 찾아 장례라도 치러주고 싶었을 것”이라며 “경제적 효율, 합리성을 논할 일이 아니다. 세월호는 국민의 시각이 아니라 가족의 시각으로 봐야 할 사건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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