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인 퍼포먼스도 이어져…외국인도 대거 참석
12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민중총궐기 집회는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씨에 대한 거대한 풍자의 장이었다.주최측 추산 55만여명(오후 5시 기준)의 집회 참가자들은 저마다 ‘내려와 박근혜’ 등 피켓을 들고 박 대통령이 자리에서 물러나라는 의미로 ‘하야’를 외쳤다.
집회 현장 인근에서 문화계 인사의 퍼포먼스도 있었다. 보수단체의 소규모 맞불 집회도 있었지만 충돌은 없었다.
이날 집회는 민주노총 조합원 등 단체 소속뿐 아니라 가족 단위로 온 사람들도 많았고 외국인들도 참석했다.
◇ ‘투쟁’ 대신 ‘하야’…‘늘품체조’는 ‘하품 체조’로 패러디
박 대통령과 최순실씨의 국정농단이 시국의 주 관심사이자 박 대통령 하야 주장의 원인이 된 만큼 이날 집회는 전반적으로 박 대통령을 풍자하는 발언과 순서가 두드러졌다.
본집회 시작 직전 참석자들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스트레칭을 하는 순서에서부터 박근혜 정권 풍자가 시작됐다.
주최 측 스트레칭 시범자는 문화체육관광부가 3억 5천만원의 예산을 들여 보급한 차은택씨의 ‘늘품체조’ 대신 3천500원짜리 ‘하품체조’를 가르쳐주겠다며 스트레칭 시범을 보였다.
손을 배에 모으고 허리와 고개를 앞으로 깊이 숙이는 동작을 할 때도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에게 검찰이 공손히 인사하는 모습을 본떴다’고 설명하고, 팔을 펴면서는 ‘하야!’라고 외치도록 하기도 했다.
민중총궐기 무대에 올라온 한 발언자는 “투쟁 대신 하야로 인사하겠다, 하야!”라고 말해 참석자들의 박수와 환호를 받았다.
투쟁사를 하기 위해 올라온 전명선 416가족협의회 위원장과 김충환 사드배치철회 성주투쟁위원장도 공통적으로 ‘최순실 게이트’를 거론하며 박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했다.
특히 김 위원장은 “막장 드라마는 ‘출생의 비밀’이 밝혀져야 끝난다고 한다. 끝까지 밝혀내서 끝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일부는 ‘배터리도 5%면 바꾼다’, ‘지지율도 실력이야! 니 부모를 탓해!’라며 박 대통령의 지지율을 조롱하는 피켓을 들었다.
서울광장으로
한국청년연대, 전국 대학생 시국회의 등 청년·대학생 단체 주최로 12일 오후 서울 대학로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퇴진촉구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서울광장으로 행진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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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계 인사와 학생들은 전통적인 집회·시위 모습 외에 퍼포먼스의 형태로 집회에 동참했다.
자신을 ‘문체부 블랙리스트’로 소개한 임옥상 화백은 서울시청 서울도서관 앞에서 우레탄 폼과 한지로 만든 박 대통령과 최씨의 대형 얼굴 상에 못을 꽂아넣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이들 얼굴 상에는 ‘오방낭’, ‘차은택’, ‘고영태’라고 적혀 있었다. 이 퍼포먼스에는 임 화백뿐 아니라 현장에 모인 참석자들도 동참했다.
대학로 사전행사 ‘열린 문화난장’에서는 대학생 밴드가 정오께부터 “우리가 누구게? 개·돼지”라는 가사의 노래를 공연하면서 시민 관심을 불러모았다.
닭대가리 모양의 탈을 쓴 대학생들과 닭 모가지를 비튼 조형물이 눈에 띄었다. 조형물에는 ‘내가 이러려고…’라고 쓰여있어 목을 잡힌 닭이 곧 박 대통령을 뜻하는 것으로 풀이됐다.
심지어 대학로에서 도심으로 행진한 대학생들 선두에는 다홍치마에 노란 저고리를 입고 오방색 풍선을 든 채 박 대통령의 가면을 쓴 사람이 서서 대학생들을 이끌기도 했다.
참가자들은 야구 응원가로 많이 쓰이는 ‘아리랑 목동’이나 가수 10㎝의 ‘아메리카노’를 개사한 하야가 등을 부르며 하야를 촉구했다.
길이 4∼5m의 세월호 모형도 등장했다. 세월호에는 검은색 바탕에 노란색 글씨로 ‘구조 안 함’, ‘미수습자’, ‘유품’, ‘진실’, ‘침몰원인’ 등의 종이를 붙여 정부가 세월호 희생자들을 일부러 구조하지 않았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농민들은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는 상여를 끌고 행진했다.
촛불집회 참가한 일본국철노조
일본국철 치바동력노동조합원 220여명이 12일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촉구 집회에 참가하고 있다. 다나카 야스히로 위원장은 ”민중이 움직이고 있는 현장에 있는 것이 감동이다. 이것이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를 움직이는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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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집회에는 외국인들도 대거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이들은 대부분 한국의 ‘최순실 게이트’를 잘 알고 있었고, 일부는 박근혜 하야를 주장하기도 했다.
도요나카시 일본인 노동자·개인 200여명과 함께 한국을 찾은 일본JR 지바 지역 노동자 우루시자키 에이이치(69)씨는 “박근혜·최순실 사태를 잘 알고 있다”며 “박 대통령은 지금 당장 하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민중총궐기 사전집회로 서울광장에서 열린 ‘전태일열사 정신계승 2016 전국노동자대회’에서는 앰벳 유손 국제건설목공노련 사무총장과 발터 산체스 국제통합제조산별노련 사무총장이 박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발언을 내놨다.
특히 필리핀 출신인 유손 사무총장은 어눌한 한국어로 “박근혜 퇴진하라”고 외치고 “필리핀에서도 독재자 마르코스의 아들이 부통령이 되려는 것을 우리가 절대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환호를 받았다.
이날 서울광장에는 노조 단위별로 앉은 집회 참가자들이 많았지만, 인근 시청역과 대한문 앞, 대학로, 광화문광장 등에서는 가족이나 연인 단위로 나온 사람들도 눈에 많이 띄었다.
일부 참가자는 유모차를 끌거나 아기를 품에 안고 나오기도 했고, 어린 자녀의 손을 잡고 참석한 부모도 있었다.
어린이들은 혹시 부모를 잃어버릴까 봐 이름이나 나이, 연락처 크게 쓴 명찰 목걸이를 맸다.
한 단체는 미아방지용 팔찌를 나눠주는 행사도 벌였다.
경찰은 집회 참가자들이 늘어나자 미아보호소를 운영했다. 대한문 앞에는 임시 이동식 화장실이 설치됐다.
집회 주최 측은 “청와대로 향하자”고 외치면서도 개인적인 돌발 행동을 자제하고 자리의 쓰레기를 꼭꼭 치울 것을 당부했다.
한겨레와 오마이뉴스는 ‘박근혜 하야’ 민중총궐기 특별판 신문을 곳곳에서 나눠줬다.
집회 참석자들은 광화문광장 세월호 분향소에서 줄 서서 희생자를 추모하며 분향했다. 분향 후에 눈물을 닦으며 나오는 사람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일부는 동학농민운동과 4·19 혁명, 6월항쟁의 추억을 되살리려는 듯 ‘제폭구민(除暴救民·포악한 것을 물리치고 백성을 구함)’, ‘이승만은 물러나라’, ‘전두환은 물러나라’, ‘호헌철폐 독재타도’ 등 피켓과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한국외대 아랍어과 학생회는 2010년 이후 ‘아랍의 봄’ 시위 때 주로 쓰인 구호 ‘앗샤압 유리드 으스? 안니담(민중은 정권 퇴진을 원한다)’을 아랍어로 적은 플래카드를 들었다.
◇ 보수단체는 ‘맞불집회’ 벌였지만 충돌은 없어
보수단체는 집회 전후 인근에서 맞불집회를 벌였지만, 충돌은 발생하지 않았다.
오전 10시30분 서울 중구 파이낸스센터 앞 계단에서는 개신교단체 소속 회원 300여명이 한복을 입고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민국’이라는 구호를 외치다 30분만에 해산했고, 예수재단·대한민국살리기애국시민행동 소속 30명은 오후 2시 서울광장 바로 앞인 서울시청 시민청 앞에서 맞불집회를 열었다.
엄마부대봉사단은 오후 1시 종로구 교보타워 앞에서 200여명 규모 기자회견을 열어 시국선언문을 낭독한 뒤 여의도에서 열리는 집회에 합류했다.
그 밖에 민중총궐기 집회 곳곳에는 ‘이석기 의원을 석방하라’는 피켓과 펼침막을 든 옛 통합진보당 인사들도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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