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눈총 우려해 일본 여행·제품구입 사실 공개 안 해전문가 “비주류 될 것이라는 불안 때문…집단주의 문화 영향”
경기 의정부시의 부용고, 송현고, 의정부고 등 6개 고등학교 학생들이 26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산 제품 불매 운동 동참 선언 기자회견’에서 각자 장래 희망을 적은 손팻말을 들고 있다. 2019.7.26
연합뉴스
연합뉴스
서울의 한 대학에 재학 중인 대학생 이모(23)씨는 이달 22일부터 나흘간 가족과 함께 일본 삿포로 여행을 다녀왔다. 하지만 이씨는 주위 시선을 고려해 여행을 다녀온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고 한다.
여행에 동행한 이씨 어머니 역시 “딸과 함께 예쁜 사진을 많이 찍었지만, 카카오톡 프로필이나 배경 사진으로 올리지는 않았다”며 “평소 같으면 지인들에게 여행 기념품도 구매해 나눠줬을 텐데, 이번 일본 여행에선 아무것도 사지 않았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의 ‘경제보복’ 조치에 따른 일제 불매운동 확산으로 일본 여행에도 따가운 시선이 생기면서 일본을 찾은 한국인 관광객들이 주변 눈총을 우려해 여행 사실을 알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
최근 일본 마쓰야마로 여행을 다녀왔다는 직장인 강모(25)씨는 28일 “일본의 수출규제로 전 국민이 분노하는 와중에 ‘풍경이 예쁘고 사람들이 친절했다’는 여행기를 쓰기에 눈치가 보였다”며 “일본 여행 사진을 전혀 못 올렸다”고 아쉬워했다.
실제로 한 연예인은 최근 일본 방문 중 찍은 사진을 개인 사회관계서비스망(SNS)에 게시했다가 누리꾼으로부터 경솔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지난주 대마도로 여행을 다녀온 취업준비생 오모(25)씨 역시 비슷한 경험을 했다.
오씨는 “여자친구에게 일본으로 여행 간다고 말하니 동의하지 않는 눈치였다”며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할 것 같아 조용히 여행을 다녀왔고, 여행 사진이나 감상도 SNS에 올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일본 상품을 구매한 사실을 숨기는 경우도 있다.
대학원생 권모(29) 씨는 “평소 차를 즐겨 마시는데, 일본산 다기가 품질이 좋아서 얼마 전 일본 제품을 샀다”며 “평소 같았으면 SNS에 올려 주변에 자랑했겠지만, 불매운동과 반일감정 때문에 친한 친구들에게만 알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이 한국의 집단주의 문화와 관련됐다고 지적한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불매운동이 한국 사회 주류가 돼 규범으로 작동하고, 이를 어길 경우 비주류가 돼 배제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생겨 이런 현상이 발생한다”며 “특히 한국처럼 집단주의 문화가 강한 사회에서 심하게 나타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곽 교수는 “익명성이 보장되는 온라인상에는 불매운동에 반하는 행동들이 자주 표출되지만 현실에선 쉽게 드러내지 못한다”며 “겉으론 드러나지 않지만 남들에게 알리지 않고 일본 여행을 다니거나 일본 제품을 구매하는 사례가 꽤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