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한 땀 한 땀 수놓고 할아버지가 펼친 태극기죠”

“할머니가 한 땀 한 땀 수놓고 할아버지가 펼친 태극기죠”

손지연 기자
손지연 기자
입력 2024-03-01 00:11
수정 2024-03-03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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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장손이 전한 ‘남상락 자수 태극기’ 일화

부인 구홍원 여사가 비밀리 제작
1919년 4·4 만세운동 때 쓰여
“국기 의미 한 번 더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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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남상락 선생의 장손 남기환씨가 2019년 서울 광화문 교보생명빌딩에 걸린 대형 ‘남상락 자수 태극기’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남기환씨 제공
독립운동가 남상락 선생의 장손 남기환씨가 2019년 서울 광화문 교보생명빌딩에 걸린 대형 ‘남상락 자수 태극기’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남기환씨 제공
“태극기는 우리 민족과 국가를 상징하는데 요즘엔 너무 무관심하잖아요. 삼일절을 맞아 태극기의 의미를 한 번 더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남상락 독립운동가의 장손 남기환(75)씨는 105주년 삼일절을 하루 앞둔 29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일제강점기 몰래 숨어 태극기를 만들던 조부모에 대해 이야기하며 이런 바람을 전했다. 남씨의 할아버지인 남상락 선생은 1919년 충남 당진에서 4·4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다 체포됐다.

당시 만세운동 때 사용된 태극기는 직접 짠 명주에 손바느질로 만든 희귀한 태극기로 “사료적 가치가 크다”는 평가와 함께 2008년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이후 남상락 선생의 이름을 따서 ‘남상락 자수 태극기’라고 불리고 있다. 2019년 3월 1일에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서울 광화문 교보생명빌딩에 대형 태극기로 내걸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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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상락 선생이 1919년 4월 4일 독립만세운동을 위해 부인과 함께 제작한 태극기. 문화재청 제공
남상락 선생이 1919년 4월 4일 독립만세운동을 위해 부인과 함께 제작한 태극기.
문화재청 제공
남씨는 “할머니가 한 땀 한 땀 수놓은 태극기를 할아버지가 품에 넣어 만세운동에 갖고 나가셨다”며 “조부모님이 공들여 만든 태극기가 문화재로도 등록되고 전국에 널리 알려져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대각선에 있는 건곤감리의 위치가 다르고 다른 태극기와 달리 그 모양도 삐뚤빼뚤해 ‘수제’ 느낌이 물씬 풍기는 이 태극기는 남상락 선생의 부인인 구홍원 여사의 손바느질로 탄생했다. 당시 구홍원 여사가 수놓은 태극기는 1919년 4월 4일 당진 지역을 뒤덮었다.

“일제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할머니는 한밤중에 몰래 수를 놓았다고 하셨어요. 할아버지가 일제의 요시찰인물이라 불도 제대로 켜지 않은 채 바느질을 이어 갔다고.”

남씨는 어린 시절 할머니가 들려준 태극기 제작기를 전하면서 “자랑스럽다”는 말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그는 “당시는 태극기나 독립선언서 같은 문서를 가진 것만으로도 경찰에 끌려가 고문받던 시절이라고 들었다”며 “할머니는 늘 마음을 졸이면서 태극기를 만들었다고 했다”고 전했다.

이 태극기는 남씨 가족이 보관하다가 남상락 선생(1943년 사망)과 구홍원 여사(1984년 사망)가 사망한 이후인 1986년 10월 남씨의 아버지이자 남상락 선생의 아들인 남선우씨가 독립기념관에 기증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지금은 독립기념관이 소유·관리하고 있다.
2024-03-01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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