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순에 최고령 고교 졸업… “손주 같은 학우들 덕”

구순에 최고령 고교 졸업… “손주 같은 학우들 덕”

한상봉 기자
한상봉 기자
입력 2024-02-08 23:27
수정 2024-02-08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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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송암고 김은성 할아버지

6·25 탓 학업 중단, 전쟁 후 생업에
배움 갈증에 86세 늘배움학교로
2년 과정 마치고 또 고교 2년 공부
나이 어린 동급생들엔 ‘젊은 오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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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순의 나이로 오는 21일 고양송암고등학교를 졸업하는 김은성(왼쪽) 할아버지가 정재도 교장과 미리 졸업 사진을 찍고 있다.  고양송암고등학교 제공
구순의 나이로 오는 21일 고양송암고등학교를 졸업하는 김은성(왼쪽) 할아버지가 정재도 교장과 미리 졸업 사진을 찍고 있다.
고양송암고등학교 제공
“손주 같고 자식 같은 친구들이 너무 잘해 줘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전쟁 때문에 중단할 수밖에 없었던 학업을 뒤늦게 이어 가 90세가 돼 마침내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게 된 할아버지가 있어 화제다. 주인공은 김은성 할아버지로 오는 21일 경기 고양시 성석동에 있는 고양송암고등학교 제43회 졸업식에서 졸업생 99명을 대표해 꽃다발을 받는다. 1934년생인 김 할아버지는 국내 최고령 고등학교 졸업 기록도 세우게 됐다.

김 할아버지의 학업은 한국전쟁 때문에 중단됐다. 파주 임진강 북쪽 장단군 군내면에서 중학교에 다니다가 서당으로 옮겨 2년째 공부하고 있을 때 전쟁이 터져 공부를 접어야 했다. 중공군의 가세로 국군과 유엔군이 서울 이남으로 퇴각했던 1951년 1·4 후퇴 때는 정든 고향마저 떠나야 했다. 아버지를 따라 남동생 둘과 함께 파주시 금촌을 거쳐 충남 예산까지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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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교복을 입고 포즈를 취한 김은성 할아버지 모습. 고양송암고등학교 제공
옛날 교복을 입고 포즈를 취한 김은성 할아버지 모습.
고양송암고등학교 제공
전쟁 후 10대 후반의 김 할아버지는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미군기지 식당에서 2년 일했고 작은아버지가 일하던 경기도 이천의 한 고등학교에서 가축도 돌봤다. 군 복무를 마친 뒤에는 강원도 영월의 시멘트 공장에서 일했다. 김 할아버지는 여든을 한참 넘긴 나이에 배움의 길로 다시 들어섰다. 2020년 2월 서울 은평구 평생학습관 늘배움학교에 입학한 것. 2년 과정을 마친 뒤에는 송암고 문을 두드렸다. 송암고는 평생교육법에 의해 설립된 2년제 학력 인정 고등학교로 10대 청소년뿐 아니라 배움의 때를 놓친 중장년층이 많이 다닌다.

은평구 자택에서 지하철과 버스를 번갈아 타고 통학하면서도 코로나19 확진으로 1주일 빠진 것을 제외하곤 단 하루도 결석하지 않았다. 김 할아버지는 “학교 분위기가 좋아서 힘든 줄도 모르고 즐겁게 다녔다”고 말했다. 교내 외국어 말하기 대회에서 일본의 독도 야욕을 질타하고 이웃사촌으로 잘 지내자는 연설을 일본어로 해 은상을 받는 등 공부도 잘하는 모범생이었다. 나이 어린 동급생과의 관계도 좋아 ‘젊은 오빠’로 불렸고 가끔 수업이 지루할 때는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때의 이야기를 풀어놓기도 했다.

담임교사로부터 대학 진학을 권유받았으나 김 할아버지는 “나이가 들어서 암기가 버겁다”면서 “남은 생은 고향인 군내면 읍내리에서 닭과 염소를 키우며 살고 싶다”고 했다.

2024-02-09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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