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지법 형사2부(정봉기 부장판사)는 11일 강간살인 혐의로 구속기소된 박모(50)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주장이나 변명이 일부 모순되거나 석연치 않은 점이 있고, 통화내역을 삭제하는 등 피고인이 이 사건 범행을 저질렀다고 의심할 만한 정황이 있지만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입증이 됐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검사가 제시한 대부분의 증거를 인정하지 않았다.
피해자가 피고인의 택시에 탑승했는 지 밝히기 위한 미세섬유 증거, 피고인의 차량으로 보이는 택시가 녹화된 폐쇄회로(CC)TV 영상 등 모두가 증거로 인정되지 않았다.
재판부는 또 “수사당국이 피고인의 거주한 모텔방을 압수수색해 피고인이 사건 당일 입고 있었던 청바지를 증거물로 입수했지만, 긴급을 요하는 사정이 없었음에도 영장을 발부받지 않은 채 모텔방을 수색해 형사소송법 규정을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강간살인죄와 같은 중대범죄 수사를 위해 필요성이 인정된다 하더라도 위법한 압수수색은 허용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박씨의 변호를 맡은 최영 변호사는 “미세섬유 등 증거만으로는 유죄를 입증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심이 들었다”며 “2009년 사건 발생 당시 증거가 부족한 상황 속에서 수사당국이 피고인을 용의자로 한정해 다른 가능성을 배제한 것이 문제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 판결이 확정되지 않았지만 앞으로 구속된 기간을 고려해 절차를 거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지난달 13일 결심공판에서 박씨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박씨는 2009년 2월 1일 새벽 자신이 몰던 택시에 탄 보육교사 A(당시 27·여)씨를 성폭행하려다 미수에 그치자 목 졸라 살해한 뒤 시신을 애월읍 농로 배수로에 유기한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경찰은 2016년 2월 장기미제 전담팀을 꾸려 수사를 재개했고, 검찰이 보강수사를 진행한 끝에 지난해 12월 박씨를 구속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