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질’로 2달러 벌던 소년, 대통령 꿈 가시화

‘주먹질’로 2달러 벌던 소년, 대통령 꿈 가시화

박성국 기자
박성국 기자
입력 2016-04-10 15:19
수정 2016-04-10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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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로 링 떠나는 ‘팩맨’ 매니 파퀴아오
승자로 링 떠나는 ‘팩맨’ 매니 파퀴아오 필리핀 복싱 영웅 ‘팩맨’ 매니 파퀴아오가 10일(한국시간)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MGM그랜드가든 아레나에서 열린 은퇴경기에서 승리한 뒤 두 팔을 번쩍 들어 환호하는 관중들에게 답례하고 있다. 네바다 AP 연합뉴스
필리핀의 ‘국민 영웅’이자 전 세계 복싱 팬들의 우상이었던 ‘팩맨’ 매니 파퀴아오(38)가 10일(한국시간) 고별전 승리를 끝으로 링을 떠났다. 선수 생활을 끝낸 파퀴아오는 자국 필리핀에서 정치활동에만 전념할 것으로 전해졌다.

파퀴아오는 이날 미국 라스베이거스 MGM 그랜드가든 아레나에서 열린 티모시 브래들리와의 세계복싱기구(WBO) 웰터급 논타이틀 매치에서 12라운드 끝에 심판 전원 일치 판정승을 거뒀다. 심판진은 모두 116-110으로 파키아오의 손을 들어줬다. 파퀴아오의 ‘위대한 여정’에 마침표를 찍는 순간이었다.

파퀴아오는 1978년 12월 7107개에 이르는 필리핀의 섬 중에서 두 번째로 큰 민디나오 키바웨의 작은 빈민촌에서 여섯 자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그가 처음으로 ‘주먹질’을 시작한 것은 12살 때였다. 가난한 형편 탓에 어린 나이에 돈을 벌어야 했고, 어린 파퀴아오가 할 수 있는 것은 복싱뿐이었다.


파퀴아오는 배를 타고 수도 마닐라로 건너가 단돈 2달러를 벌기 위해 길거리 복서 생활을 시작했다. 2달러 중 절반은 홀어머니에게 드렸다. 힘든 시간을 버티며 성장한 파퀴아오는 이후 필리핀 국가대표팀에 합류하며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당시 아마추어 전적은 64전 60승 4패.

1995년 프로 무대에 입문한 파퀴아오는 세계 복싱의 위대한 역사를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다. 프로 입문 3년 만에 플라이급 챔피언에 오른 후 체급을 올리며 슈퍼 밴텀급, 슈퍼 페더급에 이어 라이트급까지 챔피언 벨트를 따내며 아시아인 최초로 4체급 타이틀 석권의 기록을 달성했다. 그 전까지는 6개 체급을 석권한 오스카 델라 호야가 전설이었다. 하지만 호야는 2008년 12월 웰터급 타이틀전에서 파키아오에게 무참하게 패하며 은퇴했다. 당시 호야의 잘생긴 얼굴이 작은 체구의 아시아 복서에게 맞아 눈도 뜨지 못할 정도로 부풀어 오르는 모습은 세계 복싱팬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안겨줬다.

파퀴아오의 질주는 멈추지 않았다. 라이트웰터급 챔피언 벨트를 따낸 데 이어 웰터급, 라이트 미들급까지 종횡무진으로 활동하며 8체급을 석권하는 새 역사를 썼다. 복싱 역사상 누구도 기록하지 못했고, 앞으로도 나오지 못 할 기록이라는 게 세계 복싱계의 평가다.

이런 파퀴아오는 가난과 자연재해로 고통받는 필리핀 국민의 희망이었다. 이런 국민적 인기에 힘입어 파퀴아오는 2010년 필리핀 하원의원 선거에 당선됐다. 의정 활동과 선수 생활을 병행해 온 파퀴아오는 오는 5월 상원의원 선거도 준비하고 있다. 현지에서는 5월 선거 당선은 물론 차기 유력 대권 후보로 점치고 있다.

파퀴아오의 프로모터 밥 애럼은 “파퀴아오는 똑똑하고, 필리핀 사회 개혁에 대한 깊은 열망을 갖고 있다”면서 “그는 자신의 사회공헌과 관련한 일을 필리핀 전역에서 하고 싶어서 정치활동에 뛰어든 것이다. 파퀴아오는 그러한 변화를 가능하게 할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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