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체팀 수비축구

약체팀 수비축구

입력 2010-06-18 00:00
수정 2010-06-18 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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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그물수비에 스페인 침몰…공격축구 힘 못써 지루한 경기

다시 수비축구의 시대가 도래했다.

11일 개최국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멕시코의 경기를 시작으로 17일 스페인-스위스전까지 월드컵 본선 진출 32개국이 모두 한 경기씩을 치렀다. 우승후보로 꼽히던 유럽과 남미의 축구강호들은 4골을 몰아친 독일을 제외하고 모두 체면을 구겼다. 파상적인 공세로 경기 초반 상대를 공황상태로 몰아넣고 낙승을 거둘 것으로 예상됐던 강팀들은 간신히 이기거나 비겼고, 심지어 ‘최상의 스쿼드’ 스페인은 스위스에 덜미를 잡혔다.

이들은 평균 6대4의 볼 점유율이 보여주듯 일방적인 경기를 펼쳤다. 하지만 어디서 들어보거나 본 적도 없는 선수들이 올망졸망 모여있는 약팀의 수비진을 제대로 뚫어내지 못했다.

브라질을 만난 북한, 스페인을 만난 스위스 등은 적게는 5명, 많게는 9명의 선수가 페널티 박스 부근에서 서성거리며 상대팀이 공격의 마침표를 찍는 것을 철저히 방해했다. 그리고 역습찬스에서는 이른바 ‘뻥축구’로 유일하게 하프라인 너머에서 서성거리던 원톱이나 투톱에게 공을 연결, 공격을 맡겼다. 성공하면 좋지만 상대에게 막혀도 그만인 이 공격전술로 북한은 만회골을, 스위스는 결승골을 만들었다. 오로지 ‘지지 않는 것’을 목표로 수비중심적 전술을 내세운 약팀 감독들의 지략이 월드컵 무대에서 먹혀든 것. 이탈리아 수비축구의 상징 파올로 말디니의 “가장 재미있는 축구는 0대0, 혹은 상대 실수로 1대0으로 이기는 것”이란 지론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1990 이탈리아 대회부터 맹위를 떨치기 시작, 2002 한일월드컵을 종점으로 사라진 줄 알았던 수비축구 부활의 신호탄이다. 하지만 그 형태는 수비라인 뒤에 홍명보(한국), 프란츠 베켄바워(독일)로 대표되는 스위퍼를 배치했던 종전의 수비축구와 다르다. 기존 수비축구가 철저한 대인마크를 기본으로 한 반면, 최근 위력을 발휘한 수비축구는 공간을 허용하지 않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공간을 이용한 전술이라는 점에서 그라운드 전 지역에서 숫적 우위를 앞세워 압박을 통해 경기를 지배하는 토털사커와 유사하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압박이 하프라인과 센터서클이 아니라 페널티 박스와 아크에서 시작된다는 것.

결과적으로 화끈한 공격축구를 기대했던 팬들에게는 짜증나는 경기가, 이변을 기대했던 팬들에게는 흥미진진한 경기가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장형우기자 zangzak@seoul.co.kr
2010-06-18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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