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복귀 검토 TPP협정 부속 공동선언문 준용 가능성
미국이 13일(현지시간) 발표한 환율보고서에서 한국의 외환시장 개입내역 공개를 노골적으로 요구하고 나선 가운데, 투명성을 높이면서도 투기 세력에게 빌미를 주지 않을 묘수를 찾는 한국 외환당국의 고심은 깊어지고 있다.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오는 19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회의 및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춘계회의에서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와 연달아 만나 우리나라의 외환시장 개입내역 공개에 대한 협의를 마무리 지을 예정이다.
15일 외환당국에 따르면 미국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복귀를 검토 중인 가운데, 우리나라의 외환시장 개입내역 공개방식은 TPP협정을 준용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 정부는 상반기 내에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 여부를 결정할 계획인데, 미국이 복귀할 경우 가입이 불가피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앞서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한국 정부와 경쟁적 평가절하와 환율조작을 금지하는 확고한 조항에 대한 합의(양해각서)가 마무리되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지만, 정부는 외환시장 개입내역 공개는 미국 등 특정 국가와 쌍무적으로 협의하는 사안이 아니라 전세계를 상대로 하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김동연 부총리는 지난 13일 기자들과 만나 “외환시장 개입내역 공개는 미국과 쌍무적으로 협의하는 게 아니라 전 세계를 상대로 하는 것”이라며 “IMF와 G20의 권고에 따라 그동안 논의의 연장선상에서 어떻게 할지 결정하되 어떤 경우에도 특정 국가와 쌍무적으로 할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2015년 TPP협정 부속으로 작성된 TPP 회원국의 거시경제정책당국 공동선언문에 따르면 회원국들은 외환시장의 분기별 개입내역을 적절한 투명성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1분기 이내의 시차를 두고 공개하기로 약속했다.
다만, 예외조항으로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는 외환시장에서 6개월 단위로 자국 통화로 외화 순매수내역을 6개월의 시차를 두고 공개하기로 했고, 베트남은 6개월 단위로 유효순매수내역을 6개월의 시차를 두고 공개하기로 했다.
정부는 말레이시아나 싱가포르, 베트남과 유사한 형태로 6개월 단위의 순매수 내역만 6개월의 시차를 두고 공개하는 방식이 적절한지 검토하고 있다.
정부 입장에서는 매수·매도 총액이 아닌 순매수액을 공개하는 게 적절하다는 판단이지만, 공동선언문은 매수·매도 총액을 공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는 게 고심거리다.
외환당국 관계자는 “TPP관련 외환시장 개입 관련 규정이 있었지만, 미국이 탈퇴한 뒤로는 무력화됐는데, 이번에 다시 복귀하면 재차 부각될 가능성이 크다”면서 “말레이시아나 싱가포르, 베트남 등 처음 공개하는 국가들은 6개월 단위로 6개월의 시차를 두고 공개하는 것을 용인해준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매수·매도 총액을 공개하는 것과 순매수액을 공개하는 것은 차이가 크다”고 덧붙였다.
순매수 내역이 아닌 매수·매도 총액까지 공개하면 투기세력에 빌미를 줄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김동연 부총리는 19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리는 G20 재무장관회의 IMF·WB 춘계회의에서 라가르드 IMF 총재와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과 잇따라 만나 우리나라의 외환시장 개입내역 공개에 대한 협의를 마무리지을 예정이다.
협의 결과를 어떤 방식으로 발표할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정부 관계자는 “TPP협정 공동선언문에 명시 방안과 구두 합의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검토중”이라고 말했다.
앞서 한국 정부는 외환시장의 개입내역을 시차를 두고 공개하는 안을 검토 중이라고 지난달 18일 발표한 바 있다. 수출 등에 유리하게 환율을 조작하고 있다는 일각의 의심을 불식하고 외환정책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차원이다.
미국 재무부는 13일 발표한 환율보고서에서 “한국의 외환시장에서 조처들에 대한 면밀한 모니터링을 지속할 것”이라며 “한국은 투명하고 시의적절한 방식으로 외환시장 개입내역을 신속히 공개하라”고 촉구했다.
이는 지난해 10월 환율보고서에서는 언급되지 않았던 내용이다.
미국, 일본, 호주, 캐나다 등 12개국은 2016년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아우르는 세계 최대의 무역협정인 TPP를 체결했으나 보호 무역주의를 주창해온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월 TPP 탈퇴를 공식 선언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일본과 호주를 주축으로 한 나머지 11개국은 지난 3월 칠레에서 TPP 수정판에 합의하고 명칭을 CPTPP로 개정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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