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만 대한상의 회장 송년 인터뷰
“더워지는 냄비 안의 개구리들은 피부 곳곳에 곧 화상을 입기 시작할 겁니다. 이제 정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박 회장은 26일 서울 중구 대한상의 회관 집무실에서 출입기자들과 송년 인터뷰를 갖고 이같이 말했다.
박 회장이 언급한 ‘십자가’가 필요한 대표적 사례는 바로 혁신산업과 전통산업 간 갈등의 상징이 돼버린 ‘카카오 카풀’이다. 택시업계는 카카오가 최근 가동 중인 카풀 시범서비스를 중단해야 한다며 대규모 시위에 나서고 있다.
이 ‘카풀 논란’으로 대표되는 산업 혁신 갈등과 상법개정안, 공정거래법 개정안, 협력이익공유제 등 기업을 둘러싼 각종 규제 논란이 “아무도 십자가를 지고 싶지도, 아픈 해결책을 내고 싶지도 않아서 해결이 안 되는 것”이라는 게 박 회장의 분석이다. 이익집단을 비롯해 정부와 정치권이 ‘총대’를 메고 근본적인 해법을 내놓지 않은 채 임시방편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의미다.
박 회장은 카풀 논란에 대해 “이해관계자들이 직접 충돌해 갈등을 키우는 것보다 정부나 국회가 주도하는 갈등 조정 메커니즘을 만드는 게 필요하다”면서 “생존의 위협을 받는 취약계층의 두려움을 줄여 주고 양보를 끌어내는 등의 해법이 필요한데 아무도 나서지 않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어 “이런 상황에서 법안은 끊임없이 기업을 규제하는 방향으로 발의되고, 신산업으로의 진입이 불가능한 채 주력 산업이 고착화돼 있어 성장이 되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 회장은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에 대해서도 소신을 밝혔다. 그는 재계의 불만과 달리 정부가 지나치게 친(親)노동정책을 펴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전제했다. 박 회장은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저임금 근로자 비율이 최고 수준이며 근로시간도 가장 많은 나라 중 하나”라면서 “숫자가 증명하고 있는 문제는 정부가 당연히 개선해야 한다”고 최저임금 인상 필요성에 대해 언급했다.
하지만 박 회장은 “중소·중견·영세사업자들의 상당수가 자기 한계에 도달했는데 비용 부담이 늘어나니 극렬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면서 최근 최저임금 산정 시 주휴시간과 주휴수당을 포함하기로 최저임금법 시행령 개정안을 마련한 데 대해 “속도 조절론이 뒤늦게 고개를 든 것은 ‘만시지탄(晩時之嘆)’”이라는 아쉬움을 드러냈다. 또 “약정 유급휴일을 제외한 것은 현실적인 접근”이라면서도 “대법원 판례(주휴시간을 분모에서 제외)대로 해야 한다는 게 기본 입장”이라며 재계의 요구 사항을 더했다.
내년 우리나라의 경제에 대해서는 “획기적인 노력이 없으면 중장기적인 하락세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 회장은 규제 그물망과 서비스산업 부진, 소비심리 위축 등과 더불어 “근본적인 개혁 조치가 제대로 이뤄진 게 없는 데다 보호무역주의 등 대외 환경은 더 나빠졌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도 “정부가 예산을 증액해 재정을 조기 투입하고 주력 산업을 지원하겠다는 정책을 내놓은 만큼 상승의 여력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처럼 정책들이 실제 수행되는 과정에서 디테일을 원 취지에 맞게 잘 살려야 효과를 볼 것”이라면서 “그렇지 못하면 구호나 선언에 끝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다”고 말했다.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남북 관계의 개선과 사회 갈등의 근본적 치유도 주문했다.
하락세를 지속하는 경제에 대해 쓴소리도 했다. 박 회장은 “우리나라 경제의 구조적 하향세를 막기 위해서는 전체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취약한 사회안전망을 그대로 둔 채 고용 유연성을 높이려 하거나 과거의 규제 시스템 아래서 일자리를 늘리려 하는 등 부분적, 단편적 접근이 문제 해결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원인과 해법을 대부분 알면서도 진척이 안 된 것은 매번 단기적인 이슈에 매몰되거나 이해관계에 막혔기 때문”이라면서 “성장과 분배라는 이분법적인 담론에서 벗어나 모든 이슈를 넓은 관점에서 풀어 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2018-12-27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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