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 에세이] 어머니께 드린 돈/전호환 부산대 총장

[수요 에세이] 어머니께 드린 돈/전호환 부산대 총장

입력 2016-08-23 23:24
수정 2016-08-24 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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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환 부산대 총장
전호환 부산대 총장
장터에서 사온 몇 개의 달걀을 어미닭 품에 안겼더니 병아리로 부화되었다. 40∼50마리의 닭에서 나온 달걀을 시장에 내다 팔아 초등학교 월사금도 내고 어머니께 드렸다. 학비나 돈을 벌려고 닭을 키운 것은 아니다. 달걀에서 병아리가 부화한다는 사실이 신기해서 했다. 천진한 호기심이 또 다른 결과를 나은 것이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1930년대 경암 송금조 선생의 이야기다. 또 하나 더 있다. 학교 앞 문구잡화 가게에서 연필 한 다스를 통째로 사 친구들에게 낱개로 팔아 이윤을 남긴다. 자신은 친구들이 쓰고 버린 몽당연필을 주워 붓두껍에 끼워서 사용했다고 한다.

선생은 어려서부터 돈을 무척 좋아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선생이 아직도 궁금한 것은 돈을 좋아했던 진정한 이유다. 철부지로서 돈 자체를 좋아했던 것인지, 어머니에게 기쁨을 주는 일이 돈이어서 좋아한 것인지 아직도 판단이 서지 않는다고 한다. 분명한 것은 꼭 돈을 모아서 어머니께 드려야지 했던 어린아이의 천진한 마음이다. 이것은 아들로서 어머님 은혜에 보답해야겠다는 어른스러운 생각과는 분명 다른 것이다. 이상은 최근 출간된 경암 선생의 자서전 ‘나는 여기까지 왔다’의 일부 내용이다.

나는 교사인 아버지의 직장을 따라 합천군 소재 3곳의 초등학교를 다녔다. 중학교도 2곳을 다녀야 했다. 3학년 초 갑자기 아버지께서 진주로 전근을 가셨다. 합천이라는 시골에서만 살았던 나로서 진주라는 도시는 아주 큰 도시였다. 개학 한 달 만에 옮긴 진주의 중학교에서는 수학 교과서를 이미 다 배우고 있었다. 시골 중학교에서는 겨우 시작만 했을 뿐인데. 첫 시험에서의 성적이 전교 30여등이었다. 그때까지 줄곧 1등만 했던 나는 물론 부모님의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때 내가 받은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스트레스로 나는 결국 폐렴에 걸려 집에서 2주를 쉬었다. 공부가 싫었다.

내가 다녔던 중학교는 집에서 5㎞ 남짓 떨어져 있었다. 시내버스를 타고 통학을 했다. 내 기억에 버스요금이 편도에 10원 정도 한 것 같다. 수업을 마치고 걸어서 집으로 가면 10원이 절약되었다. 한 달이면 200여원 모였고 나는 이 돈을 어머니께 드렸다. 교사인 아버지의 월급으로 밥은 굶지 않고 살았다. 그러나 마산에서 공부하는 형님의 유학 경비와 집 월세금 마련으로 어머니는 이집 저집에서 돈을 항상 빌렸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돈을 드리는 것이 정말로 기뻤다. 어린 시절 경암 선생께서 어머니께 돈을 드리면서 느꼈던 그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 이유다.

경암 선생과 나의 차이점은 분명 있다. 선생은 닭장을 경영해서 남긴 이윤으로 어머니께 드렸고 나는 어머니가 주신 용돈을 절약해서 드린 것이다. 내게 사업이라 할 만한 첫경험은 대학 1학년 때이다. 고등학교 시절 영화 ‘스카이 하이’를 보고 대학을 가면 꼭 행글라이더를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1977년 2학기를 마치고 다 배운 교과서를 팔아 행글라이더를 만들어 금정산에서 비행을 했다. 저렴하게 만든 것이라 금방 부서졌다. 이대로 비행의 꿈을 포기할 수는 없어 경비 마련을 위해 운동장에 행글라이더를 펼쳐 놨다. 입회비 3만원으로 회원을 모집했다. 하숙비가 2만원 하던 시절이었다. 71명의 회원이 들어왔고 213만원의 돈으로 행글라이더 7대를 손수 만들었다. 대학 축제 때 금정산 정상에서 대학 운동장으로 날아갔고 당시 문홍주 총장으로부터 100만원을 받았다. 콘텐츠만 좋으면 돈은 들어온다는 것을 그때 체험했다. 경암 선생이 사업에 성공해 큰돈을 번 이유이기도 하다.

경암 선생은 쉰 줄에 요산 김정한 선생을 만나 교육의 중요성에 대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그 깨달음을 실천하기 위해 2003년 우리나라 개인 기부로는 최대 액수인 305억원을 우리 대학의 발전 기금으로 약정해 화제가 되었다. 195억원의 거금을 기부하고 기부금 운영 문제로 학교와 마찰이 일어나 결국 소송으로 이어졌다. 선생의 자서전에서 ‘나는 기부에 실패했다. 다시는 나 같은 기부자가 생기지 않았으면 한다’라는 울분의 소리가 마음을 적신다. 기부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의 선물이다. 아들이 어머니에게 한없이 주고 싶은 기쁜 마음의 선물을 어머니가 버린 탓이다.
2016-08-24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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