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적화라는 환상
코코 크럼 지음/송예슬 옮김
위즈덤하우스/304쪽/1만 9000원
목표만 좇다 여유·공간 잃은 현대인우울증·저출산 등 최적화 이면 지적


‘도널드 트럼프 2기’를 맞으며 흔들리고 있지만 미국이 20세기 들어 세계 초강대국 지위를 유지하면서 자본주의 황금기를 이끌 수 있었던 것은 테일러주의와 포드주의로 대표되는 최적화를 통한 효율성 추구 덕분이다. 최적화와 효율성이란 개념이 전 세계로 퍼져 나가고 생산기술 발전이 뒷받침되면서 현대사회는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천국이 될 수 있었다.
이 책은 수학적 개념에 불과했던 최적화가 현대사회를 떠받치는 신앙이자 거대한 문화의 형태를 갖추게 된 계기와 효율성을 강조하면서 우리가 잃은 것은 무엇인지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저자인 코코 크럼은 매사추세츠공과대(MIT)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응용수학자로, 실리콘밸리에서 데이터 과학자로 일했고 캘리포니아 버클리대(UC버클리)와 미시간대에서 데이터 과학을 가르치기도 했던 이력을 갖고 있다. 최적화의 실체를 벗겨 내는 데 그야말로 ‘최적’의 작가인 셈이다.
크럼은 “효율성을 최우선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측정할 수 없고 최적화할 수 없는 것들을 배제한 뒤 최적화라는 메타포가 다른 세계관을 잡아먹도록 뒀다”며 “최적화로 최적화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고 자신을 기만한 결과 역설적으로 우리의 변화 능력은 정체됐다”고 통렬하게 비판한다.
현대인은 효율성과 수익성이라는 목표를 좇으며 최적화의 혜택을 누렸지만 그로 인해 외부 충격을 완화해 줄 여유 그리고 크든 작든, 장기적이든 단기적이든 각자의 상황에 따라 선택되는 규모의 감각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는 공간을 잃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우울증 환자의 증가, 공급망과 안정적 사회의 붕괴, 고비용의 대도시 직장 생활, 급격히 추락하는 결혼율과 출산율이야말로 최적화의 어두운 면이라고 꼬집는다.
책을 읽으면서 한국 과학정책을 담당하는 관료들이 입버릇처럼 사용하는 ‘선택과 집중’이라는 용어가 떠올랐다. 1990년대 이후 지난 30여년 동안 선택과 집중을 강조했고, 그 극단이 지난해 연구개발(R&D) 예산 삭감 사태로 드러났다. 우리 과학계 역시 선택과 집중이라는 또 다른 최적화의 허상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최적화와 효율성의 문제점을 속속들이 파헤쳤지만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마지막 장에서까지도 명확히 제시하지 못했다는 점은 이 책이 남긴 유일한 아쉬움이다.
2025-04-11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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