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들 “심신이 모두 병들었다”

탈북자들 “심신이 모두 병들었다”

입력 2010-10-06 00:00
수정 2010-10-06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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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 탈북자들은 삼엄한 감시와 경계를 뚫고 북한 땅을 탈출하고도 상당 기간 중국이나 태국, 베트남, 라오스, 미얀마 등을 전전하다 어렵게 남한에 들어온다. 그러다 보니 몸과 마음이 상처투성이인 경우가 허다하다.

비근한 예로 국내에 들어온 탈북자의 47%가 가장 큰 어려움으로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꼽았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탈북자 정착지원 기관인 하나원 관계자는 “이 곳에서 퇴소하는 북한이탈 주민의 절반 이상은 몸과 마음의 어디 한 군데 이상 아픈 상태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탈북자들이 각종 질병으로 겪는 육체적 고통은 심각한 수준이다.

2006년 이후 국립의료원과 충남대병원의 ‘북한이탈주민 진료센터’를 찾아온 탈북자가 3천300여명(300여명 입원치료)에 달했는데 이는 같은 기간 전체 탈북자의 17%에 해당하는 것이다.

흔한 질병 중 하나가 결핵인데 1999년부터 최근까지 검진받은 1만6천340명의 탈북자 중 2.2%(308명)가 결핵 판정을 받았다.

또 하나원 내 의료기관인 ‘하나의원’이 2006∼2009년 4년간 탈북자 3천378명에게 투베르쿨린 검사(간이 결핵검사)를 한 결과, 항체 양성반을을 보인 경우는 81%에 그쳤다. 나머지 19%는 결핵 감염의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는 얘기다.

간염에 걸린 경우는 더 많아, 2004∼2010년 하나원에 입소한 탈북자 1만3천124명 중 10.8%인 1천306명이 양성 반응을 보였다.

문제는 이런 만성 질환을 고치려면 이 꾸준한 진료가 필요한데 하나원 퇴소 후에는 거의 체계적인 치료를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전체 탈북자의 78%를 차지하는 여성들은 각종 부인과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다.

하나원에 따르면 매달 입소하는 200명 안팎의 여성 탈북자 중 절반 정도가 산부인과 질환을 호소하고 있으며, 완전히 정상인 경우는 10% 전후에 불과하다.

하나의원의 권민수 공중보건의(산부인과)는 “지난 1년간 북한이탈 여성을 진료한 결과 부인과 질환의 80∼90%는 질염이었고, 그밖에 난소낭종이나 자궁근종, 무월경 등도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나의원이 올 상반기 탈북 여성 145명을 대상으로 자궁경부암 검사를 한 결과, ‘자궁암 이환 가능 단계’가 67명(46%)이나 됐고 ‘자궁암 전 단계’가 9명이었으며, 1명은 이미 자궁암이 발병한 상태였다.

이런 신체적 질병도 문제지만 정신적 질환은 더 심각하다.

일례로 2007년 입국한 40대 여성탈북자 김모씨는 하나원 퇴소 후 정착지 보호담당 경찰의 도움으로 식당에 취업했지만 채 일주일을 다니지 못했다.

김씨가 계속 두통과 복통을 호소해 식당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담당 경찰과 함께 병원에 가 진찰을 받아보니 신체적으로는 전혀 이상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나의원의 전진용 공중보건의(신경클리닉 담당)는 “이런 증상을 ‘신체화’라고 하는데 스트레스로 인한 심리적 반응이 신체적 고통으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탈북자의 4분의 3을 차지할 정도로 여성 탈북자 숫자가 늘어나면서 우울증 환자도 급증하고 있다.

탈북 과정에서 받은 격심한 스트레스, 북한이나 중국에 두고온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죄책감, 국내입국 후 겪는 사회.문화적 충격 등이 우울증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탈북자 의료서비스 단체인 ‘새롭고 하나된 조국을 위한 모임’(약칭 새조위)의 신미녀 대표는 “여성 탈북자 대부분은 우울증을 앓고 있는데 심한 경우 자살을 기도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달 14일 현재 국립의료원에 입원중인 탈북자 11명 중 4명이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었다.

하나의원의 전진용 공중보건의는 “탈북자 가운데 우울증, 불안,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 정신분열병 등을 앓고 있는 경우가 많다”면서 “이런 신경정신적 질환을 조용히 치료해줄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새조위의 신미녀 대표는 “아픈 것을 치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남북간의 사회.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문제들을 풀 수 있도록 도와주는 현실적 대책이 시급하다”면서 “예컨대 탈북자가 사망했을 때 장례를 도와주는 시스템을 운영하면 이 사회에서 ‘버려진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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