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들, ‘더 나은 삶’ 살고 있나?

탈북자들, ‘더 나은 삶’ 살고 있나?

입력 2010-10-06 00:00
수정 2010-10-06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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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한해 동안 남한에 입국한 탈북자는 모두 2천927명으로, 불과 73명이 빠지는 3천명이었다. 작년보다는 다소 줄어들 것으로 보이지만 올해도 2천명은 무난히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1950년 통계를 잡기 시작한 이후 올해 8월까지 입국 탈북자 누계가 1만9천569명에 달해, 10월 말이면 바야흐로 ‘탈북자 2만명 시대’가 열릴 것으로 예상된다. 매년 탈북자 수천명이 국내로 들어오는 현실이 우리 앞에 닥쳐 있는 것이다.

여기서 가장 먼저 제기되는 문제는 매년 수천명의 북한 주민들이 왜 생명의 위협까지 감수해가며 북한을 등지는 것일까 하는 것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2만명’이란 숫자가 쌓이기까지 오랜 세월이 흘렀고 북한의 내부 사정도 많이 달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주된 탈북 동기는 여전히 ‘살기가 어려워서’로 부동의 1위를 고수하고 있다.

다만 ‘생활고’라는 탈북 동기에 담긴 절박성은 세월이 흐르면서 상당히 퇴색한 것으로 분석된다.

초창기에는 ‘생활고’라는 탈북 동기에 ‘지독한 굶주림에서 벗어나야 하겠다’는 다급함이 배어 있었지만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더 나은 삶을 위한 도전’의 성격이 강해졌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아울러 2000년대 초까지 탈북 동기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던 ‘체제 불만’이나 ‘처벌에 대한 우려’가 최근 들어 급격히 감소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일각에서는 ‘더 나은 삶’을 지향하는 탈북이 늘어나면서 생사의 갈림길에 설 수도 있는 탈북의 실질적 위험과 탈북 과정의 인권유린 실상 등을 경시하는 풍조가 확산되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통일부의 2000∼2003년 자료(이후 통계 미공개)에 따르면 ‘생활고’로 인한 탈북은 2000년 40.7%에서 2003년 60.4%로 급상승한 반면 같은 기간 ‘처벌 우려’는 21.1%에서 6.2%로, ‘체제 불만’은 16.6%에서 9.6%로 낮아졌다.

2008년 말 충남대 통일문제연구소 주최 학술회의에서 하나원 측이 발표한 내용을 보면, 1999년부터 2008년 6월까지 하나원에 입소한 탈북자 1만2천여명 가운데 63%(7천970명)가 탈북 동기로 ‘생활고’를 꼽았고 ‘처벌 우려’와 ‘체제 불만’은 각각 6%, 5.6%에 그쳤다.

2003년에 위의 세 가지 동기가 차지했던 점유율과 비교하면 ‘생활고’로 인한 탈북은 그후 더 늘어난 반면 ‘처벌 우려’와 ‘체재 불만’은 감소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주된 탈북 동기인 ‘생활고’의 성격이 ‘아사(餓死)위기 탈출’에서 ‘더 나은 삶’ 쪽으로 변하기 시작한 것은 2000년 초반부터다.

많은 주민들이 굶어죽은 1990년대 중.후반의 이른바 ‘고난의 행군’ 시기에는 아사의 공포가 실제로 컸지만, 2000년대에 들어서 북한의 식량 사정이 최악의 국면을 벗어나면서 탈북 심리도 점차 변한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로 한 자릿수에 머물던 연간 탈북자수는 1994년에야 52명으로 처음 두 자릿수를 기록했고 대기근이 정점에 달했던 1999년에는 148명까지 늘었다.

그런데 북한이 2000년 대기근의 종료를 공식 선언한 이후 탈북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한 점에 주목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2000년대 들어서는 ‘굶어 죽는 공포’가 탈북의 주된 동기가 아님은 반증하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탈북 동기가 이처럼 변한 배경에는 우선 북한으로 흘러드는 외부 정보 유입량이 크게 증가했다는 점이 꼽힌다.

북한의 국경 지역을 통해 훨씬 더 잘 사는 한국과 중국의 생활상이 구전되는가 하면, 한국 드라마나 영화 CD가 은밀히 유통되면서 ‘더 나은 삶’을 갈망하는 주민들의 심리를 자극했다는 것이다.

3년 전 탈북했다는 김모(47) 씨는 “여전히 북한에서 먹고 사는 문제가 어렵지만 고난의 행군 시절만큼은 아니다”면서 “자꾸 외부에서 들려오는 얘기가 있다 보니 (탈북에 대해) 한 번 생각할 것을 두 번 생각하고 기대감도 더 갖게 되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탈북자들이 늘어나면서 이들이 북한의 가족들에게 몰래 소식을 전하거나 중국에서 만나는 일도 증가해, 자연스레 후속 탈북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통일부는 최근 국내로 들어온 탈북자의 40% 정도가, 가족이나 친인척이 먼저 탈북해 남한에 들어와 있었던 경우로 파악하고 있다.

서정배 통일부 정착지원과장은 “예전에는 체제 불만으로 인한 탈북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경제적인 이유와 더 나은 삶에 대한 동경이 주요 동기”라면서 “이미 탈북한 가족과의 인간적 유대로 탈북하는 경우도 급속히 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매달 수백명의 탈북자가 국내에 들어오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부작용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더 나은 삶’을 찾아 목숨을 걸고 남한에 왔다는 탈북자들 가운데 현재 만족할 만한 삶을 살고 있는 경우가 과연 몇%나 될지 극히 회의적이라는 것이다.

북한인권시민연합의 이영환 조사연구팀장은 “‘더 나은 삶’을 추구한다면서 지방에서 서울로 이사하는 정도로 탈북을 바라보면 안 될 것”이라면서 “대다수 탈북자들이 ‘죽어도 더 이상 이렇게는 못살겠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탈북을 감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북한의 제반 사정이 최악이라는 전제 아래 탈북자를 ‘이민자’가 아닌 ‘난민’의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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