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실상 파악에 도움” vs “헛소문만 양산”
전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북한에서도 최근 들어서는 은밀한 내부 동향이 비교적 자주 흘러나오고 있다.북한의 체질이 바뀌었다거나 주변 환경이 변해서가 아니라 거의 2만명에 달하는 국내 탈북자들이 철저히 통제되는 북한 사회를 비집고 들어가 이런저런 소식들을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탈북자들의 이런 ‘능력’은 북한에서 대기근이 발생한 1990년대 중·후반 이후 정치범 수용소 등의 충격적인 실상을 외부에 알리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국내 탈북자 가운데 상당수는 중국의 중개인을 통해 북한 내 가족,친지 등에게 돈을 보내거나 이동전화 통화를 하면서 연락을 유지하고 있다.이 과정에서 크고 작은 북한 소식이 당사자의 의도와 무관하게 외부에 전해진다는 것이다.
이런 탈북자들의 전언을 토대로 운영되는 것이 바로 단파라디오나 인터넷사이트 형태의 대북 매체들인데,10여년 전부터 생겨나기 시작해 현재도 4∼5개는 비교적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이런 대북 매체들의 등장으로 종전에 ‘탈북자 사회’ 안에서만 유통되던 북한 소식은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됐다.심지어 일부 탈북자들은 이런 매체의 기자나 통신원으로 일하면서 적극적인 취재활동을 벌이기도 한다.
탈북자 학술단체인 ‘NK지식인연대’는 작년 11월말 북한에서 단행된 화폐개혁 소식을 가장 먼저 외부에 알려 세상을 놀라게 했다.
대북 매체들은 그후에도 화폐개혁의 부작용으로 북한의 물가가 살인적으로 폭등했다느니,장마당이 폐쇄되면서 만성적인 식량난이 더 악화됐다느니 하는 북한 내부 소식을 앞다퉈 전했다.
하지만 설익은 북한 소식이 이들 매체를 통해 급속히 확산되면서 결과적으로 북한의 실상을 오도하는 부작용이 속출했다.
탈북자들이 주도하는 이들 매체의 속성상 ‘김정일 건강 악화설’ 같이 북한 사회의 혼란상을 부각시키는 소식이 많다 보니,한때 북한이 급변사태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기도 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지난 3월 “소수의 탈북자들과 한국 내 인권운동가들이 휴대전화를 이용해 뉴스의 암흑지대인 북한을 관통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브로커에 의해 조작되거나,특종 보너스를 의식해 부풀린 정보가 상당수”라고 지적했다.
북한의 일반 주민들한테 들은 소식이 대부분인 대북 매체들의 한계는 이번 노동당 대표자회를 앞두고 여실히 드러났다.
당초 ‘9월 상순’에 개최되는 것으로 공고된 당대표자회가 아무런 설명 없이 시한을 넘기자 부정확한 추측성 보도를 쏟아낸 것이다.
남한 내 탈북자들이 북한 내부로부터 전해들은 소식이나,이를 토대로 대북 매체들에 전하는 소식은 그 정확성과 커버하는 범주에서 분명한 한계를 갖고 있다.
북한 내에서 돌아다니는 소문이나 ‘제3자’의 전언이,북중 국경지역에 거주하거나 잠시 중국에 나온 북한 주민들에 의해 다시 외부에 전해지는 식이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북한의 주민이 남한의 탈북자 친척에게 이동전화로 소식을 전하려면 반드시 중국내 중개인을 거쳐야 한다.그런 이유에서 대북 매체의 북한 내 ‘소스’(정보 제공자)는 거의 100% 중국 이동통신망에 접속할 수 있는 국경 지역 거주자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가령 평양에서 일어난 일을 함경북도 무산의 통신원이 전해듣고 다시 남한에 전하는 식이다 보니 정보의 범주와 신뢰성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아울러 북한의 보위부 같은 공안 기관이 접경 지역 주민들이나 중국 방문자들에게 조작된 역정보를 흘릴 가능성도 상존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북한 체제의 폐쇄성을 고려하면 나름대로 정보의 가치가 충분하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북한 지도부에서 결정되는 고급 정보에는 거의 접근하지 못하지만,화폐개혁 사례에서 보듯이 일반 주민들도 접할 수 있는 ‘장마당’ 물가 동향이나 시.군당에 내려온 중앙당 지시문 같은 소식은 얼마든지 정확히 전달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서강대 김영수 교수(정치외교학과)는 “탈북자 2만명은 북한 인구(2천330만명 추정)의 약 0.1%에 해당해, 통계학적으로 좋은 샘플이 될 수 있다”면서 “단편적인 탈북자 경험담도 잘만 연결하면 북한의 실상을 파악하는 자료로 재구성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김용현 동국대 교수(북한학과)는 “탈북자들을 통해 북한의 실상이 단편적으로 외부에 전해지다 보니 과장이나 왜곡의 가능성도 상대적으로 높다”면서 “국익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북한 정보를 적극 공개해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해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