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 표석, 전후 혼란 속 정부가 세웠다”

“독도 표석, 전후 혼란 속 정부가 세웠다”

입력 2010-10-24 00:00
수정 2010-10-24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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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영토표석이 정부 차원에서 건립됐음을 보여주는 공문서가 공개돼 한국전쟁 직후 독도 경비사(史)를 규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독도 영토표석은 흔히 울릉도 주민이 조직한 독도의용수비대가 세운 것으로 알려졌지만,민간이 중심이 돼 당시 독도를 지켰는지는 여러 논란이 있었다.

 ◇전후 혼란 속 범정부적 대응=시민단체 독도수호대가 국가기록원에서 입수해 24일 공개한 정부 문서에 따르면 당시 외무부는 내무부에 공문을 보내 독도에 표석을 설치해달라고 요청했다.

 ‘일본 관헌의 독도 불법 침범에 관한 건’이라는 제목의 1953년 9월24일 문서에는 ‘독도가 실효적인 관할 하에 있다는 유형적인 증거로서 측량표 설치에 관한 공사는’이라고 적혀있다.

 문서에는 또 ‘독도 문제에 관한 관계관회의를 개최해 독도에 측량표를 설치하도록 결의하였다’는 내용이 담겨있어,당시 외무부와 군(軍) 등 범정부 차원에서 독도 문제를 심각하게 여겨 대책을 마련한 사실도 확인됐다.

 외무부의 이러한 요청은 경북도를 거쳐 울릉군에 하달됐고,울릉군은 표석을 제작해 11개월 뒤 현재 위치인 독도 동도 몽돌해안에 세웠다.

 울릉군은 이듬해 8월26일 경북도 내무국장에게 보낸 ‘독도표석 건립에 관한 건’이라는 제목의 공문에서 ‘단기 4287년(서기 1954년) 8월24일 19시 독도 동도 서쪽 해안 위령비 부근에 건립했다’고 보고했다.

 경북도청의 다른 문서에는 ‘표석제작비 70,000환,표석건립비 315,000환,잡비 15,000환’ 등 예산 집행내역도 자세히 기록됐다.

 문서를 종합하면 독도 영토표석은 알려진 것과 달리 외무부가 일본의 물리적 침범에 위협을 느껴 내무부에 요청하고 경북도와 울릉군 등의 협조를 거쳐 세워진 정부 차원의 시설물이 된다.

 독도수호대 관계자는 “독도 영토표석의 건립 과정은 그동안 일부 의용수비대원의 왜곡과 관계 기관의 무관심 때문에 잘못 전해져왔다”며 “독도를 침탈하려는 일본의 시도에 정부가 나서 영유권을 지키려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객관적 자료 부족으로 독도 경비사 논란=1950년대는 일본이 전후 혼란을 틈타 해상보안청 등을 동원해 독도에 나무 말뚝을 박는 등 독도 영유권을 둘러싼 한일 양국의 다툼이 어느 때보다 치열한 때였다.

 이번에 공개된 정부 문서의 영토표석 건립 경위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내용과 크게 다르다.

 독도 영토표석은 흔히 군인 출신의 울릉도 주민 33명으로 구성된 독도의용수비대가 세운 것으로 알려져 왔다.

 독도에 관한 각종 사료를 모아놓은 독도박물관은 전시실에 있는 영토표석 모형 옆에 ‘1954년 독도의용수비대가 동도 선창 부근에 세운 독도 지명 표석’이라고 적어놨다.

 이처럼 독도를 지키려는 정부의 노력이 민간 차원의 활동으로 바뀐 것은 1950년대 독도 경비사를 다룬 객관적인 자료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당시 일부 대원의 수기나 스스로 작성한 공적조서 등에 적힌 내용이 사실처럼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영토표석 문제는 독도의용수비대원 중 일부가 실제로는 독도에 들어간 적도 없고 활동 내용과 기간도 조작 또는 과장됐다는 ‘가짜 의용수비대 논란’의 일부에 불과하다.

 독도박물관의 자료 등에는 의용수비대가 1953년 4월 독도에 들어가 1956년 말까지 3년 8개월 동안 독도를 지키고서 1956년 말 경찰에 업무를 넘긴 것으로 돼있다.

 독도의용수비대장 고(故) 홍순칠씨는 수기에서 1953년 7월 독도에 접근한 일본 해상보안청 소속 순시선 헤쿠라호를 자신들이 격퇴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외무부가 1955년 발간한 ‘독도문제개론’은 울릉경찰서 독도순라반이 헤쿠라호를 물리친 것으로 기록했다.

 감사원은 2007년 가짜 독도수비대원 논란과 관련해 ‘33명 가운데 16명은 독도에 가지 않았다’는 내용의 감사결과를 발표하고 보훈처에 공적을 재심사해 적절한 조치를 하라고 통보했지만 가짜 수비대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국제법상 지위 하락 자초”=독도 영토표석을 누가 세웠는지는 단순한 건립 주체의 문제를 떠나 독도 영유권을 둘러싼 두 나라의 국제법상 지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안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일본이 말뚝을 박고 순시선을 보내는 등 국가가 나서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던 시기 한국의 대응이 고작 민간인의 의용 활동에 불과하다면 독도의 실효적 지배를 위한 노력이 일본에 비해 부족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특히 일부 의용수비대원의 주장대로 3년 8개월 동안 독도를 민간인이 경비했다고 인정하는 순간,이 기간 정부가 사실상 독도를 방치한 셈이 된다.

 이러한 지적에 따라 경찰은 헤쿠라호 사건이 벌어질 무렵인 1953년 7월께부터 독도 경비 임무를 공식적으로 수행한 사실을 확인해 경찰사(史)로 기록하려고 외부 전문기관에 연구용역을 의뢰했다.

 독도수호대 김점구 대표는 “영토표석 건립은 전쟁이 끝나고 어수선한 시기에 독도의 영유국으로서 국가적 지배 조처를 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라며 “왜곡된 독도 경비사를 받아들이면 국제법상 지위 하락을 자초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고 꼬집었다.

 이어 “고작 50여년 전 역사도 정립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역사적 사실을 가지고 독도 영유권을 주장할 수 있겠느냐”며 “정부와 지자체 등 독도 관련 기관들이 지금이라도 독도 역사 재정립에 힘써야한다”고 말했다.

독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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