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 vs 알파고…지배할 것인가, 지배당할 것인가

이세돌 vs 알파고…지배할 것인가, 지배당할 것인가

입력 2016-03-06 11:34
수정 2016-03-06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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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판 위 인간-컴퓨터 ‘자존심 대결’9일 역사적 5번기 시작…유튜브로 전세계 생중계

지난 1월 28일 발표된 논문 한 편에 잔잔하던 바둑계가 발칵 뒤집혔다.

인공지능(AI) 컴퓨터가 처음으로 프로 바둑기사를 이겼다는 연구 결과가 세계적인 학술지 ‘네이처’에 실린 것이다.

구글의 자회사인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알파고’(AlphaGo)라는 인공지능이 유럽 바둑 챔피언인 판후이 2단과 5번 대국해 모두 이겼다는 내용이다.

지난 1997년 체스 세계 챔피언인 가리 카스파로프를 무너뜨린 인공지능이 약 20년 만에 바둑을 새로운 정복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이전까지 바둑은 인공지능이 넘볼 수 없는 분야였다. 체스와 비교해 10의 100제곱 이상의 경우의 수를 갖고 있고, 계산력뿐 아니라 직관력 등 감각도 요구하기 때문이다.

알파고는 프로기사를 제압했다는 자체로도 충분히 성과를 인정받고 주목받을 만하다.

그러나 알파고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바둑계 최고 이슈메이커인 이세돌(33) 9단에게 대등하게 겨루자는 도전장을 내밀었다.

‘쎈돌’ 이세돌 9단은 2003년 LG배에서 당시 1인자 이창호 9단을 꺾고 정상에 오르면서 세계 바둑계 최강자가 됐고, 10년 이상 그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인류 대표’ 이세돌 9단과 ‘과학 대표’ 알파고는 오는 9일부터 5차례에 걸쳐 세기의 자존심 대결을 펼친다.

◇ 알파고, 왜 대단한가 = 알파고와 기존 바둑 프로그램의 가장 큰 차이는 자가학습 능력이다.

알파고는 기본 데이터에 기반해 시행착오 과정을 거쳐 ‘스스로’ 새로운 전략을 발견하는 법을 깨닫는다고 구글 딥마인드는 설명한다.

알파고는 신경망을 갖고 있다. ‘정책망’은 다음번 돌을 놓을 위치를 선택하고, ‘가치망’은 승자를 예측한다.

딥마인드는 프로기사들의 대국 내용을 토대로 알파고의 신경망을 훈련시켰다. 또 알파고는 자체 신경망끼리 수천만 번의 바둑을 두면서 시행착오를 통한 강화학습을 했다.

기존 컴퓨터 바둑 프로그램은 프로기사와 대국할 때 4점 정도를 먼저 두고 시작했다. 그러나 알파고는 세계 최강 프로기사와 ‘호선’으로 정면 대결에 나섰다. 그 자체로도 알파고는 현존 최강 바둑 인공지능이다.

◇ 세기의 대결 어떻게 열리나 = 이세돌 9단과 알파고는 오는 9일(1국), 10일(2국), 12일(3국), 13일(4국), 15일(5국)에 서울 포시즌스호텔에서 맞붙는다.

제한시간은 각각 2시간이며 이후 1분 초읽기 3회가 주어진다. 이번 대국은 백을 잡은 기사에게 덤 7.5집을 주는 중국 바둑 규칙을 따른다.

우승자는 100만 달러(고정환율로 11억원)의 상금을 받는다. 알파고가 이기면 상금은 유니세프와 STEM(과학, 기술, 공학, 수학) 교육 및 바둑 관련 자선단체에 기부된다.

대국은 두 사람이 마주 보는 ‘자연스러운’ 상황 속에서 열린다.

딥마인드는 아마추어 바둑 6단인 개발자를 알파고의 대타로 내세운다. 이 개발자는 모니터를 보면서 알파고가 원하는 자리에 바둑돌을 대신 놔 주고, 이세돌 9단이 놓는 수를 컴퓨터에 입력해 알파고에 알려준다.

◇ 전 세계 이목 집중 = 전례 없는 대결에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딥마인드와 한국기원이 지난달 22일 한국기원 대국장에서 개최한 기자회견에는 국내 취재진은 물론 AP, AFP 등 해외 통신사 기자까지 100여 명이 몰렸다.

이와 별도로 이세돌 9단을 향한 외신 인터뷰 요청도 쇄도하고 있다.

딥마인드 본사가 위치한 영국의 방송사 BBC와 유력지 파이낸셜타임스가 한국에서 이세돌 9단을 인터뷰할 예정이다.

바둑이 전파되지 않은 아랍권의 통신사 알자지라도 이세돌 9단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딥마인드는 이 열기를 반영해 유튜브로 이번 5번기를 전 세계에 생중계한다. 또 프로기사의 해설을 한국어와 영어로 제공한다. 한국기원이 운영하는 바둑TV도 모든 대국을 생중계한다.

◇ 알파고의 자신감…그래도 “이세돌이 이길 것” = 이세돌 9단은 5전 전승 의지를 공개적으로 내비치며 강한 자신감을 보인다.

그는 “(5번의 대국 중) 3대2 정도가 아니라 한 판을 지느냐 마냐 정도가 될 것 같다”고 밝혔다.

하지만 구글 측도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국 승률이 50 대 50이라는 전망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이세돌 9단의 천적인 중국의 커제 9단은 “프로 수준에 이르더라도 정상급 기사가 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며 지난해 10월 판후이 2단을 꺾으며 프로 실력에 다가선 알파고가 약 5개월 만에 이세돌 9단을 이길 수는 없으리라고 예상했다.

프로 바둑기사 출신 IT전문가인 김찬우(6단) AI(인공지능) 바둑 대표는 “알파고가 한 판이라도 이기기는 어렵다”며 “알파고는 아직 완벽하지 않다. 그러나 정상급 기사와 대결하려면 모든 점에서 완벽해야 한다. 정상의 기사들은 서로 완벽한 상태에서 겨루다가 작은 틈을 보이면 진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프로 기사가 정상급 기사가 될 비율은 0.1% 정도에 불과하다”고 세계 최고와 동등한 수준에 오르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세돌 9단은 5일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 최종국에서 커제 9단에게 패해 우승컵을 놓쳤다.

그러나 이는 변수가 되지 않는다. 이세돌 9단은 여전히 기대감 속에서 알파고와 대결할 날을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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