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집단 확산 있었던 극단 산 작품
연극 ‘어느 날 갑자기…!’로 경험담 풀어내
코로나19 확진부터 치료시설·병원 등 생생
서울 대학로 예술공간 혜화에서 공연 중인 연극 ‘어느 날 갑자기…!’ 가운데 코로나19 확진자들이 이송되는 장면.
극단 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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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어느 날 갑자기…!’는 그렇게 관객들을 지난해 8월로 데려간다. 8·15 광복절 집회 이후 수도권에서 급격하게 확진자가 늘어났던 때, 대학로에서 공연을 앞둔 한 극단에서 41명 중 18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공연계 코로나 확산의 근원지가 될 뻔한 상황을 코앞에서 겪은 그 극단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직접 꺼내기로 용기를 냈다.
연극 ‘어느 날 갑자기…!’ 속 장면. 성진(왼쪽)이 코로나19에 확진됐다고 하자 부모님은 마스크를 쓴 채 방에서 나오지 않고 형은 몸을 감싼 채 양주로 집 안을 소독하고 있다.
극단 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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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양성이라는 전화를 받는 순간부터 구급차를 타고 생활치료센터로 이송되는 과정, 낯선 이들과의 불편한 동거, 병원으로 옮겨져 겪은 일, 그리고 다시 세상 속으로 나와 숨을 들이키는 모든 시간들을 90분에 압축했다. 아들이 확진됐다고 하자 부모님은 냅다 마스크부터 쓰고 형은 알코올이 없자 대신 양주로 집 안 곳곳을 소독한다. 갑자기 늘어난 확진자들을 곳곳에서 태우기 위해 마구 달리는 앰뷸런스 속에서 ‘교통사고로 먼저 죽겠다’며 멀미를 하던 기억, 의료진은 물론 경찰도 들어올 수 없는 공간에서 완전히 처음 보는 낯선 사람에게 느끼는 공포, 서로 생활 습관이 달라 겪게 되는 갈등까지. 시설 속 인물 설정을 제외하고 모든 대사와 상황은 윤 대표와 단원들이 보고 들은 그대로다.
연극 ‘어느 날 갑자기…!’ 속 장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성진과 다른 환자를 태운 구급차가 달리고 있는 모습.
극단 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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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를 발칵 뒤집은 극단 산의 소식은 삽시간에 퍼지고 보도됐다. 극 중 성진의 전화에 불이 난다. “느그 단원들 16일에 우리 가게 왔었나? (안 다녀갔다고 하자) 니들이 왔다 갔다고 소문 나서 사흘째 손님이 없고 장사가 안 된다. 이 일을 우짜면 좋냐.” “나 지금 촬영해야 하는데 형 만난 거는 말 안 하면 안 되나? (벌써 했다고 하자) 아, 안 되는데. 그럼 마스크 잘 쓰고 아주 잠깐만 만났다고 해주면 안 되나?”
사람들은 환자보다 각자의 상황을 걱정했다. 6인실을 개조한 4인 병실에서 중증 환자가 들어오자 나머지 경증 환자들이 “우리가 더 나빠지는 것 아니냐”며 마스크를 쓴 채 이불까지 푹 덮어버리고 난리법석을 떠는 것도 ‘웃픈’ 장면이다. “다 똑같은 환자입니다. 아직 다 안 나아서 여기 계시는 거고요”라는 간호사의 말은 그들에게 닿지 않는다.
극단 산의 연극 ‘어느 날 갑자기…!’ 속 장면. 6인실을 개조한 4인실 병실에서 코로나19 중증 환자(가운데)가 기침을 하자 경증 환자들이 화들짝 놀라고 있는 모습.
극단 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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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이 돼서야 한 자리에 모인 극단 산 단원들은 그들도 스스로 회복의 시간을 갖기 위해 이 프로젝트를 준비했다. 윤 대표가 단원들을 설득해 석 달간 대본을 쓰며 각자의 이야기를 넣었다. 저마다 사는 곳도, 들어간 곳도 달라 에피소드가 쏟아졌다.
이 작품을 위한 배우와 스태프 20명 가운데 확진자는 6명만 참여했다. 힘들었던 기억이 떠오르며 어려움을 호소한 이도 있고, 심리치료를 받는 이도 있다. 이미 연극계를 떠난 이도 있다. 윤 대표는 아직도 대학로에서 자주 가던 식당에도 가지 않고 되도록 작품을 준비하는 동료들만 만나고 있다고 했다. “같은 위험 속에 약간의 행운이 엇갈린 것이라 생각하면 좀더 진심으로 위로하고 걱정해 주지 않을까, 그러면 우리 사이의 거리가 좀더 좁혀지지 않을까요.” 윤 대표는 객석의 박수가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치유가 되길 바랐다. 공연은 13일까지.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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