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속 비수, 우리 세 사람, 그 마당 놀이 이제 ‘고전’으로 물러납니다
1955년 그러니까 다섯 살 때였다. 당시 우리나라 여성국극 스타였던 박옥진(2004년 작고) 여사의 손을 잡고 천막극장 무대에 처음 섰다. 어린 나이에도 무대에서 노는 끼가 보통이 아니었다. 이때부터 무대 주변은 곧 놀이터였고 인생의 나무를 심는 터전이었다. 유랑극단에서 무대를 세우고 허무는 모습을 보면서 천막인생은 그렇게 시작됐다.마당놀이 30년을 결산하는 김성녀씨가 지난달 30일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 있는 마당놀이 전용 극장 앞에서 자신이 직접 짠 모자를 쓰고 웃고 있다. 뒤에 보이는 것은 이번 공연의 포스터.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 허생전부터 인기작만 추려 공연
김성녀(60). 윤문식·김종엽과 함께 ‘마당놀이 인간문화재’라고 불린다. 김성녀는 이들과 함께 매년 이맘때면 어김없이 ‘마당놀이’로 관객들과 만났다. 그렇게 30년 세월이 됐다. 이미 3000회 공연을 돌파했으며 매년 10만명 이상씩 관객을 끌어들여 지금까지 350만명이 이들의 연기에 울고 웃었다. 뿐만 아니다. 기네스북에 등재될 만큼 기록들이 많다. 예를 들어 스태프와 배우가 30년 동안 쭉 함께해 왔다. 뮤지컬은 대개 더블 캐스팅을 하게 되지만 김성녀의 ‘마당놀이’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 30년 동안 변함없이 혼자 배역을 맡으면서 한 번도 펑크를 낸 일이 없다.
김씨는 요즘 이렇게 지나온 30년을 결산하면서 윤문식·김종엽 두 사람과 함께 고별무대를 갖고 있다. 특히 최근 국립극단 예술감독으로 취임한 연출가 손진책(63)씨가 30년 무대에서 인기를 끌었던 대표작들만 모은 ‘마당놀이전’이어서 관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1981년 초연작 허생전을 비롯해 별주부전, 홍길동전, 춘향전, 심청전, 이춘풍전, 변강쇠전, 봉이선달전을 다시 엮어 새해 1월 2일까지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 마당놀이 전용극장(2500석의 천막극장)에서 관객들과 만난다.
지난달 30일 오후 이 극장에서 김씨를 만났다. 파란 형광색 모자가 썩 어울려 보였다. 저녁 공연 시간(7시 30분)이 아직 남아 있어서 분장을 하지 않고 있었다.
“이번 공연에 감회가 깊겠습니다.”
“청춘을 다 바쳤지요. 이젠 젊은 후배들에게 바통 터치를 하고 링커 역할을 할 때가 왔습니다. 30년 전 우리 세 사람(김성녀·윤문식·김종엽)에서 시작된 마당놀이도 이제는 전환의 시기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저와 함께 10년 이상씩 함께해 온 제자나 후배들도 많습니다. 제가 대학강단(중앙대)에 서게 된 것도 마당놀이를 이어갈 후진 양성을 위한 것이었고 다들 잘 따라 주고 있습니다.”
“세 분이 함께 서는 무대는 이번이 마지막인가요.”
“앞으로 어떻게 할지 아직 구체적으로 얘기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우리 셋이 이끌어온 마당놀이는 이제 고전으로 남게 되겠지요. 그동안 ‘마당놀이’라고 하면 다들 우리 셋을 떠올렸잖아요. 이번 공연에서 30년을 마무리하고 앞으로 후배들이 잘 이어 갈 수 있도록 (세 사람이) 어떤 식으로든 책임과 역할을 하지 않을까 싶네요.”
“30년 전 세 분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습니까.”
“민예극단 시절이었지요. 당시 연극계는 서양극을 주로 무대에 올리곤 했습니다. 이때 허규 전 국립극장장과 연출가 손진책, 배우 몇 명이서 한국적인 것을 만들어 보자고 의기투합했지요. 때마침 MBC 창사 기념 공모에 출품했고 채택되면서 셋이 같이 무대에 계속 서게 됐습니다.”
“마당놀이에 대한 애정이 각별할 텐데요.”
“소리 장도입니다. 웃음 속에 비수가 있지요. 30년 동안 매년 마당놀이를 찾는 관객들도 있습니다. 아이들이 어른이 됐고, 어른이 할머니 할아버지가 됐습니다. 마당놀이는 손자부터 할머니까지 온 가족이 함께 보는 유일한 무대입니다. 관객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가려운데 서로 긁어 주며 지내온 세월입니다. 그렇게 30년을 동고동락했지요.”
# 극단 미추 대표 됐어요… 남편이 섭정하겠죠
“체력 관리는 어떻게 합니까.”
“홀로 캐스팅이기 때문에 쓰러지면 안 된다는 그런 긴장감으로 버텼습니다. 특별히 운동은 하지 않고 뜨개질도 하면서 공연에 대한 마음 다짐을 하지요.”
“남편인 손진책씨가 국립극단 예술감독으로 취임했는데 극단 미추는 어떻게 됩니까.”
“제가 대표를 맡아 이끌어 갑니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손진책씨가 섭정을 하지 않겠어요(웃음). 극단 미추는 나름대로 틀이 잡혔습니다. 단원들과 의논해 초심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잘 해나가려고 합니다. 덩치를 약간 줄이고 외국인 연출가도 불러들이고, 좀 더 다양해지도록 말입니다.”
김씨는 마당놀이와 관련된 서적 3권을 펴냈다. 최근에는 ‘일곱가지 마음 담긴 따뜻한 손뜨개’라는 책도 냈다. 김씨는 이날도 공연 시간을 기다리며 뜨개질을 하고 있었다. 빨간색 등 여러 가지 색색의 실타래가 들어 있는 가방도 눈에 들어온다.
# 뜨개질로 마음을 달랩니다
“늘 뜨개질을 하시나요.”
“(웃으면서) 이 모자도 제가 짰습니다. 공연이다, 학교다 늘 바쁘니까 일탈하고 싶잖아요. 잠시 여백을 짠다고나 할까요. 공연 때는 ‘오늘 관객이 많이 찾아줄까’ 하는 걱정도 생기잖아요. 그런 생각도 잊을 겸 뜨개질을 합니다.”
“언제부터 뜨개질을 하셨나요.”
“40년 됐습니다. 뜨개는 거짓말을 안 합니다. 한올 한올 정직하게 서로 연결되고…. 창의력이자 수학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창조의 기쁨을 만끽하는 것이 뜨개질이지요.”
“그동안 몇 벌 정도의 옷을 짰는지요.”
“옷은 한 80벌 정도 될 겁니다. 주변 사람들한테 선물도 많이 했습니다. 공연 때 피아노를 잘 쳐주면 그분한테 선물도 하고…. 실을 사러 갈 때는 동매문시장도 가고 수입상가도 가고 그럽니다.”
앞에 언급한 대로 김씨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 박옥진 여사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는 “어머니는 선생님이자 무대 예술의 선배이기도 합니다. 예인으로서 진정한 인내와 희생이 무엇인지 가르쳐준 분입니다. 30년간 마당놀이 단독 배역을 맡으면서 버텨온 것도 어머니의 힘이지요.”라고 말했다.
김문 편집위원 km@seoul.co.kr
2010-12-03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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