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1명의 한맺힌 누명 벗겨준… 어느 검사의 마지막 재판

1091명의 한맺힌 누명 벗겨준… 어느 검사의 마지막 재판

강동삼 기자
강동삼 기자
입력 2023-09-22 06:34
수정 2023-09-22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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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사건 직권재심 합동수행단 변진환 검사가 지난 20일 합동수행단 현판 앞에서 애써 미소짓고 있다. 제주 강동삼 기자
제주4·3사건 직권재심 합동수행단 변진환 검사가 지난 20일 합동수행단 현판 앞에서 애써 미소짓고 있다. 제주 강동삼 기자
“1949년 6월 28일 군법회의를 거쳐 200명을 재판하는데 전부 사형선고를 내렸다. 그 다음날인 29일도 전부 사형, 30일도 전부 사형…. 그렇게 3일동안 345명이 전부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 다음날 7월 1일에는 238명이 전부 무기징역을 받았다. 어떻게 345명을 3일동안 재판하면서 단 한명도 예외 없이 똑같이 사형을 할 수 있는가. 무죄도 한 명 없이, 징역 1년도 없이.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가. 그만큼 엉터리 재판이었다. 마치 군대가서 줄을 잘 서야 하는것 처럼, 어떤 날에 재판을 받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운명이 바뀌었다.”

#“피고인 OOO는…”이라는 이름을 부르는 순간 그는, 그만 울컥하고 말았다지난 12일 오후 제38차 4·3 군사재판 직권재심 재판이 열리던 날인 제주지방법원 제201호 법정에서 제주4·3 합동수행단(단장 강종헌) 변진환 검사가 의견진술이 시작됐다. 그러나 이날은 변 검사 답지 않게 시작부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변 검사에겐 이날 4·3 직권재심이 어쩌면 마지막 재판이 될 수도 있는 날이었다. 법정은 이내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지난 20일 그는 “그날 아침부터 웬지 조바심이 났다”고 일주일 전의 마지막 재판을 떠올리며 말했다. 검사 인사를 일주일여 앞둔 날이어서 이번 재판이 어쩌면 그에겐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날은 제38차 직권재심이어서 단짝 정소영 검사가 의견진술을 하는 날이었다. 짝수 차에는 정 검사가, 홀수 차에는 자신이 하기로 합의가 돼 지금껏 약속처럼 지켜져 왔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정 검사에게 “오늘 내가 의견 진술하면 어떨까요”라고 넌지시 물어봤고, 떠날 것을 예감한 정 검사도 흔쾌히 “그렇잖아도 선배가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특별히 준비한 멘트 있냐”고 물어왔다. 그는 보통 의견진술을 할 때 준비된 원고를 읽을 뿐, 특별히 가감하지 않는 편이었다. 감성 넘치는 법정 밖에서와 달리, 법정 안에선 그는 매우 이성적이었다. 그러나 이 날은 달랐다.

어쩌면 이날 재판은 수형인 4·3 피해자 대부분이 ‘사형’ 또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재심을 해서여서 감정이 더 복잡미묘해졌는지 모른다. 그는 유족들에게 ‘당신의 아버지’는 잘못해서 그런 형벌을 받은 게 아니라는 진실을 말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공소사실 요지를 낭독할 때 “피고인은 OOO은”이라고 이름을 부르는 순간, 이내 목이 메이고 말았다.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이름을 부르려는 순간, 그만 울컥한 것이다. 무고한 희생자의 억울한 옥살이가 떠오르고, 말도 못한 채 침묵의 삶을 지탱해온 70여년의 시간이 가슴 속으로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는 평소에도“재심때 마다 가장 힘든 게 눈물을 참는 일”이라고 했다. 실제 유족들의 가슴아픈 증언은 냉정한 사람마저 눈물을 흘리게 했다.

#검사는 유죄를 입증하는 일만 해봤지, 재심을 통해 무죄 받는 일을 해본 적이 없다이날 유족들과 방청객들은 숨죽인 채 그가 말을 잇기를 바랐다. 마치 윤동주 시인의 ‘별 헤이는 밤’에 나오는 ‘별 하나의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 …패, 경, 옥…’ 이라고 힘주어 하나 하나 불러 보는 것 처럼, 그는 희생자 이름 석자를 부르는 순간, 안경 쓴 뺨 사이로 소리없는 눈물이 흘러 내렸다.

그는 끓어오르는 감정을 간신히 추스르며 “제주 출신이어서 4·3을 잘 이해할 것 같아 위에서 날 제주로 보낸 것 같다”면서 “그런데 난 4·3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고, 재심사건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검사들은 유죄를 입증해서 처벌하는 일만 해봤지, 누구의 무죄를, 유죄판결 난 재판을, 재심을 통해 무죄받도록 하는 일을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이어 “4·3을 너무 몰랐던 게 부끄러웠다”면서 “그러나 이젠 억울하고 무고한 희생자들의 무죄를 입증하고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소회하듯 전했다.

진술이 끝나자 마자, 법정 여기저기서 약속한 듯 우레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유족들도, 방청객들도, 변 검사의 마지막 재판이 될 수도 있다는 예감을 했던 걸까. 선고가 난 뒤 박수가 쏟아지던 평상시와 달리 이날은 변 검사의 의견 진술이 끝나자마자 그동안의 고생과 수고를 알고 있다는 듯 격려와 애정을 보낸 것이다.

#새로운 곳으로 발령 나 제주를 떠나는 그는 “4·3은 내 운명… 끝까지 마치지 못한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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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9일 설문대여성문화센터 1층 카페에서 서울신문과 4·3 관련 인터뷰를 하던 변진환 검사의 모습. 제주 강동삼 기자
지난 3월 29일 설문대여성문화센터 1층 카페에서 서울신문과 4·3 관련 인터뷰를 하던 변진환 검사의 모습. 제주 강동삼 기자
그리고 일주일 후인 지난 20일 법무부는 고검검사급 검사 631명, 일반검사 36명 등 검사 667명에 대한 전보인사를 9월 25일자로 단행했다. 아니나 다를까. 변 검사(안산지청 부부장검사)도 거기에 있었다.

거짓말처럼, 일주일 전 38차 군사재판 직권재심이 그에겐 마지막 4·3 재판으로 남는 순간이었다.

서귀포시 서홍동이 고향인 그는 2021년 11월 24일 합동수행단 출범과 함께 제주에 내려왔다. 가족들과 떨어져 주말부부로 사는 삶도 수월하지 않았을텐데도 묵묵히 4·3 희생자들의 무죄 판결만을 위해 살았다. 거동이 불편한 희생자와 유족이 있으면 직접 찾아가 일일이 진실을 들으려고, 무죄임을 입증하려고 사력을 다했다. 4·3 관계자료의 알아볼 수 없게 흘려 갈긴 한자들과 사투리로 진술된 글들을 해독하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한자선생(서예가)인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아 그는 끈기있게 해냈다.

더욱이 하나로 똘똘 뭉친 합동수행단은 지난해 2월 10일 첫 직권재심 청구 이후 제38차까지 군사재판 직권재심으로 4·3 희생자 1091명의 명예를 회복시켰다. 모두 무죄 판결을 이끌어내 그들의 억울한 누명을 씻겨줬다.

변 검사는 직권재심 재판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으로 지난해 12월 6일 74년 만에 누명을 벗은 박화춘(96) 할머니를 꼽았다. 생존 희생자로 침묵하며 살았지만, 그 굴레를 벗어던지고 용기 냈던 박 할머니처럼 어쩌면 또 있을 지 모를 생존 희생자들에게 세상을 향해 억울한 삶을, 가족들에게까지 숨겨온 진실을 밝히기를 희망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1년 10개월간 오로지 4·3과 살았고, 오롯이 4·3 군사재판 직권재심에 매달렸다. 앞으로 그가 없는 직권재심을 걱정하는 유족들이 많다. 강종헌 단장도 그를 붙잡고 싶어서, 인사와 관련 1차 희망지를 쓸 때 ‘제주 유임’으로 써주길 권했단다. 그러나 그는 “직권재심에 대한 A~Z까지 그 모든 것을 일사천리로 할 수 있게 시스템화 했기 때문에 사람이 바뀌어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끝까지 유족들을 안심시켰다. “4·3은 내 운명이었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온 변 검사. 그는 23일 제주를 떠나기 전, 4·3재판과는 마지막 인사를 했다.

“ 4·3 희생자 그 영령들의 명을 받들 듯이, 그 혼을 달래는 마음으로 항상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마치지 못한 게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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